설거지산을 옮기며

신동숙의 글밭(47)

 

설거지산을 옮기며

 

먹고 돌아서면 설거지가 쌓입니다. 식탁 위, 싱크대 선반,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묻거나 조금씩 남은 크고 작은 냄비와 그릇과 접시들. 물컵만 해도 가족수 대로 사용하다 보면 우유나 커피 등 다른 음료컵까지 쳐서 열 개는 되니까요. 가족들이 다 함께 한끼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난 후,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모으다 보면 점점 쌓여서 모양 그대로 설거지산이 됩니다.

 

그렇게 설거지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일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한 생각이 듭니다. 하루 동안 우리의 눈과 귀, 의식과 무의식 중에 먹는 수많은 정보들. 읽기만 하고 덮어둔 책 내용들이 내면 속에선 정리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사색과 묵상을 통해 정리되거나 비우지 못하고, 때론 마음 한구석에 쌓이고 얼룩이 져서 일상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우두커니 서 있는 설거지산이 그대로 커다란 산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산을 한 고비 넘는 듯한 부담감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기도 하고요. 삼십 년 가까이 설거지를 해오는 지금도 가끔은 이런 마음이 일어나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아직 중학생 딸아이에게도 선뜻 시키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염두에 두는 건 설거지가 사람에게 많은 배움을 줄 거라는 경험에서 온 예상입니다.

 

하다 보면 설거지를 하는 일은 설거지산을 하나 옮기는 일이 됩니다. 이제는 나름의 규칙도 몇 가지가 있답니다. 그 방법대로 하다 보면 일의 앞뒤가 서로 엉키지 않으면서, 크게 헤매지 않고 설거지산을 무난히 옮길 수 있답니다. 참,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스승이자 벗이 있어서 지루함을 잊게 하기에 오히려 그 시간이 즐거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동행자는 유튜브로 듣는 법정스님의 육성 법문, 목사님의 주일 말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 등 옛 선비들의 이야기, 최근에는 신부님이 연작으로 강연하신 '토마스 머튼'이 있습니다. 물을 틀거나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동행자의 말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산을 옮기는 초입부터 미리 단도리를 해둡니다. 소리를 최대치로 올리고 핸드폰이 물에 젖지 않는 선상에서 최대한 제 귓가에 둡니다. 때론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 두기도 하고요.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나면 시작하는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첫 번째 일은, 산을 옮겨둘 텅 빈 땅을 마련하는 일. 즉 건조대에 남은 그릇과 수저 등을 모두 비우는 일입니다. 새롭게 씻은 그릇을 엎어둘 빈 곳을 마련해 두는 일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글을 쓰는데 앞서 내 생각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생각을 비우거나 내려놓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소 추상적인 일이기에 모호할 수 있지만, 분명한 한 마음은 '주시지 않으면,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며 하나님 앞에 업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옷자락 아래에 나의 모든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겸손의 마음입니다. 산을 넘거나 옮기는 일 앞에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한 생각은 무겁고 거추장스런 짐이 될 뿐이니까요. 내 안의 모든 근심, 걱정, 무거운 짐을 주님의 옷자락 아래에 내려놓으려는 한 마음. 그 가벼움 속에 살짝 가슴께를 스치는 자유함이 가끔 선물처럼 주어지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일은, 크고 작은 그릇과 씻겨야 할 모든 식기를 물에 적셔 놓는 일입니다. 어쩌다 밥그릇이 충분히 담기지 못하고 한쪽이 올라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눌러 붙은 밥풀 하나를 떼어 내기 위해서 한 번의 문지름이 열 번, 스무 번이 되기도 합니다. 무난히 넘어오던 설거지 길에 괜한 용을 쓰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밥풀을 떼다 보면, 일상에서도 불필요한 용을 쓰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저 물에 푹 담궈 두기만 해도 스윽 한 번의 문지름이면 해결되었을 수많은 마음의 일들. 내 뜻대로 억지로 하려다가 잘 안되어 혼자 얼굴을 붉히거나 제 풀에 꺾여 낙담한 경우는 없었던가. 그저 나를 내려놓는 침묵과 눈물의 기도에 온몸이 푹 잠길 수 있었다면 저절
로 풀려질 마음의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요.

 

세 번째 일은, 크고 단단한 그릇은 아래로 작거나 깨지기 쉬운 유리컵은 위로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수저는 되도록 모아서 맨 나중에 한꺼번에 한 줌씩 모아서 씻기로 합니다. 나름의 분류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점은 깨어지기 쉬운 그릇은 맨 위에 올리거나 따로 놓아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눈에 잘 띄도록 하는 이유는 무심결에 부딪혀서 깨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마음도 가로수의 간격 만큼 공간을 두고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빈 공간은 하늘이 채우고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다면 하고요. 서로에게 거는 기대와 욕심과 사리사욕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의 존재만으로 감사와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저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가까운 가족들에게 가장 안되는 일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네 번째 일은, 효율성입니다. 몸의 동선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수돗물이 혼자서 흘러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 헹군 그릇을 오른손이 엎어둘 때, 동시에 왼손은 흐르는 수돗물에 그 다음으로 헹굴 그릇을 적시고 있는 일입니다. 효율성이란 불필요함과 사족을 없애고, 단순함과 간소함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의미보다는 재미를 찾는 일들, 모임들이 제게는 불필요함입니다. 의미와 가치를 우선에 두는 삶을 지향합니다.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마음이 그 속에서 만족하게 되면 재미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제게 의미와 가치 있는 일이란, 첫째,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시는 일. 둘째, 사람들에게 유익과 행복이 되는 일. 셋째, 나 스스로에게도 유익과 행복이 되는 일. 이렇게 세박자 왈츠의 리듬처럼 이 세 가지가 만족되는 일이 저에겐 의미와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재미는 그림자처럼 따라올 수밖에 없을 테고요.

 

다섯 번째 일은, 그 모든 과정 중에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괜히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몸에는 불필요한 힘을 주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일. 호흡을 평온하게 유지하다 보면 그대로 마음의 평온함으로 이어짐을 봅니다. 그 평온함 속에서 들려오는 스승이자 벗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을 하며, 호흡과 마음의 결을 고르는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춘 듯한, 저에게는 고요한 시간이 됩니다.

 

여섯 번째 일은, 눈에 보이는 설거지를 하는 일과 마음의 설거지를 같은 선상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은 보이지 않는 일의 실상이라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그래서인지 설거지 을 옮기다 보면 마음까지도 점점 가지런해지고 정갈해지는 기분이 절로 드는 것은 그 때문일 테지요.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의 일과 마음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는 일. 우리의 선조들이 지향한 학문의 길, 곧 마음을 챙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에게는 영혼을 챙기는 일이 될 테지요.

 

일곱 번째 일은, 조금 힘에 부치는 순간이 와도 감사함으로 한 걸음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겹쳐 놓은 그릇과 그릇이 서로 끼었다가 분리가 되지 않는다거나, 조심한다고 해도 유리컵이 미끄러져 깨지는 예외의 경우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순간 일어나는 당혹스러움을 날숨과 함께 가볍게 흘려보낸 후 들숨일 때 '다치지 않고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하며 감사의 마음을 먹는 일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흐르는 물처럼 다가옵니다. 곧 감사함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매 순간이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내어주는 일임을 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없는 듯 계시는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실 테고, 때론 나 스스로가 그런 사실을 놓치더래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하늘에 태양처럼 여전할 테니까요. 이렇게 설거지산을 말끔히 빈 곳으로 옮겨 놓는 일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말끔히 씻기고 정리정돈된 주방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정갈하게 정리정돈된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또 그 다음 식사 때가 다가오고 있으까요. 내 몸의 호흡처럼 먹고 사는 일은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엔 끊이지 않고 오고가며 흘러가는 강물이기에. 우리 모두의 일상이 평화의 강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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