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신동숙의 글밭(52)

 

"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때, 달리는 차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딸아이가 빵을 먹다가 흘린 부스러기를 모으더니 차 창밖으로 냅다 던집니다. 순간 아찔한 마음이 들어서 물었습니다.
 
딸아이의 대답은, 이렇게 땅바닥에 던지면 개미가 와서 먹을 거라며 순간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옵니다. 평소에 마당이나 공원에서 음식을 먹다가 흘리면, 땅에 흘린 음식을 개미나 곤충이 먹으라고 한쪽에다 놓아두던 습관이 무심코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다릅니다.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린 곳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입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린 딸아이와 얘기를 나눕니다. "만약에 개미가 빵 부스러기를 먹으러 찻길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딸아이는 놀란 듯 자기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서로가 그렇게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서로에게 다짐하듯 되뇌이는 말입니다. 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그러다가 큰일 납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개미나 다른 생명이 먹이를 보고서 순간적으로 찻길로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오랜 세월 수많은 직업이 있어 왔고, 때론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서 사라지는 직업도 있을 테고요. 앞으로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기도 할 것입니다. 일자리를 찾아서 모여드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양식을 놓아두는 것처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우리 중엔 계십니다.
 
안전이 보장되는 곳에, 생명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곳에, 삶의 의미가 있는 곳에 양식을 놓아두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가질수록 좋은 머리와 마음을 그러한 착한 일자리 만드는 데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쳐다만 봐도 아찔한 높은 곳에 일자리를 놓아두고 월급을 줄 테니 올라가라고 합니다. 확실한 안전장치도 없이 누군가의 아버지에게. 잔혹하고 슬픈 역사인 군함도처럼 맨몸으로 누워서 천장을 보며 석탄을 캐야 했던 강제 노역자는 우리들의 아들이었습니다. 아찔하게 높은 곳과 바닷속 탄광은 다르지 않습니다. 수직으로 높이 높이 쌓으려는 마음은 탐욕과 가까움을 봅니다. 수평으로 지방으로 공평하게 선한 발전이라면 말초신경까지 피가 잘 도는 건강한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그러한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돈이면 뭐든 다한다는 어두운 마음과 좁은 소견이라면 위험합니다. 그러한 일자리는 참으로 나쁜 일입니다. 나와 내 가족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은 사실은 남에게도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 황금률입니다. 황금률은 어느 한쪽에게 더 잘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소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입니다. 지켜져야 할 인간의 도리입니다. 황금률의 아름다움은 고용인만 지니는 덕목은 아닙니다. 피고용인도 스스로의 존엄성을 황금률의 선상에서 스스로 깨어서 자각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화와 균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테지요.
 
그동안 한국은 돈, 돈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너무나 많이 넘어왔습니다. '발전'이라는 허울뿐인 이름 하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변의 아픔을 둘러보지 않고서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안전과 행복'이라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의미와 가치가 삶 곳곳에서 민들레꽃처럼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착한 일자리가 많아질수록 우리네 삶 구석구석에서 더 다양하고 향기로운 꽃들이 웃음처럼 피어날 테지요. 제 자신도 그러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 제 스스로가 무디어지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책을 읽고 사색을 합니다. 그리고 침묵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12) 이것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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