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신동숙의 글밭(61)


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아들은 아침부터 티비를 켜면서 쇼파에 자리를 잡고는 한 마리 봉황새처럼 이불을 친친 감고서 둥지처럼 포근하게 만듭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모양새입니다. 아침식사를 챙기고 사과와 단감을 깎아 주고는 억지로 데리고 나오려다가, 먼저 가 있을 테니, 오게 되면 딸기 쥬스와 빵을 사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옵니다. 


반납할 대여섯 권의 책과 읽을 책과 노트와 필기구와 물통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맵니다. 몸을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로 순간 숨이 푹 땅으로 내려앉을 듯 하지만, 한쪽 귀에만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말씀이 어둡고 구석진 마음마다 밝혀주는 햇살 같아서 발걸음을 가벼웁게 해줍니다. 


집을 나서고 보니 5일 장날입니다. 아침밥이 벌써 소화가 되었는지, 혼자 걷는 걸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군겆질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함께 있었다면, 엄마 소매를 붙들고 걸음을 멈추어 사달라고 했을 떡볶이, 어묵, 닭꼬지, 김말이입니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집을 나서지 않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순간 집으로 되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작은 의지가 이내 제 풀에 꺾인 것은 어깨를 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마냥 무겁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가던 걸음을 돌이켜야 하거나 때로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다 보면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선뜻 몸이 가지 못하는 이유가 저마다 짊어진 일상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은 아닌가 헤아려봅니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의 말씀이 한 줄기 햇살처럼 전해져옵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 불신과 미움과 분리의 무거운 마음을 발걸음마다 날숨마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나에게 내려주시는 사랑의 평화를 이 좁다란 가슴에도 담을 수 있을런지요.


무엇보다 가벼웁게 할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도록 수시로 내려놓을 일입니다. 그 홀가분함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임을 봅니다. 언제든 나를 부르는 소리에 '네'라며 가볍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날숨마다 몸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합니다. 날숨마다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조금은 길게 내쉬는 날숨 그 다음에 들숨처럼 저절로 채워주시는 은총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내 안에 고요히 머물러 쉼을 얻는 평화와 사랑의 호흡이 강물처럼 이어지기를요. 그리고 아들이 언젠가는 텔레비전과 이불 없이도 스스로 앉아서 고요히 마음을 바라보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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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태워줘!

신동숙의 글밭(60)


엄마, 태워줘!





엄마, 태워줘!

버스 타고 가거라


골목길 걷다가

강아지풀 보면

눈인사도 하고


돌부리에 잠시

멈춰도 보고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콩나물 시루 속 

한 가닥

콩나물이 되면


옆에 사람 

발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기는


함께 걷는 길

평화의 길

사랑의 길

버스 타고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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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맞추기

  • 나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그 분의 그림 안에서 살아가기에, 나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만남 앞에 사심없이 다가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의가 나의 사심으로 인해서 가리워지지 않기를요.

    신동숙 2020.01.18 13:30
    • 모든 순간에 담긴 하늘의 뜻을 인정하면, 분명 나를 통해서도 멋진 그림을 그리실 테지요.

      한희철 2020.01.21 08:59 DEL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9 01:52
    • 한결같은 걸음,
      반갑습니다.

      한희철 2020.01.21 09:00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0)

 

퍼즐 맞추기

 

몰랐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이끄시는 방법 중에는 새로운 만남이라는 방법이 있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두 사람과 점심 식사를 했다. 정릉교회에 부임을 한 뒤로 예배 시간에 자주 얼굴을 대하게 되는 젊은 내외가 있었다. 새벽예배는 물론 금요심야기도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설교 내용을 열심히 적을 만큼 예배에 집중하는 내외였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두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고, 처음으로 차 한 잔을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국민대 교수라는 것, 주일에 출석하여 섬기는 교회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점심을 약속하게 되었던 것인데,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음속 기도제목도 나눌 수가 있었다. 이야기 중에 들려준 퍼즐 이야기가 고마운 메아리처럼 들렸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퍼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이해하기 힘든 일과 시간들은 왜 이런 것이 내 삶에 주어졌을까 이상한 퍼즐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이 없으면 하나의 그림은 완성될 수가 없다고 말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허락되는 새로운 만남도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만남이라는 조각 하나를 건네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그림으로 그려가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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