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이 되는 충만한 시간

신동숙의 글밭(64)


한 점이 되는 충만한 시간



해가 뜨면 하루를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일찌기 해가 뜨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도 계시고, 더러는 아예 낮과 밤이 뒤바뀌어서 저녁답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도 우리네 주변에는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어,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두고 사색을 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씻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가르치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떠나는 일은 눈에 보이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내면에도 수많은 일이 개울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좋아하고, 잘해 주다가, 욕심을 부리고, 이뻐하다가, 미워하고, 용서 못해 괴로워하다가, 아파하고, 슬퍼하고, 울다가, 비우고, 감사하고, 또다시 사랑을 하고, 마음은 그렇게 우주 만큼 커졌다가, 어느 순간 한 점이 되기도 합니다. 


책을 한 권 읽더래도 모두가 제 나름의 좋은 선택 기준이 있습니다. 재미와 유익을 주는 책을 고르기도 하고, 책 제목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끌어당기기도 합니다. 가끔은 재미보다는 의미와 가치를 우선에 두고 선택을 하다보면,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우선에 두는 일은 나와 너,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유익과 행복이 되는 길을 선택하려는 작은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토머스 머튼은 유익하고 의미있는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한 시간을 조용히 있는 것이 10주 동안 타자기를 치고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고 더 큰 힘을 준다. 그런데도 사랑은 날마다 나를 어디론가 몰고 간다. 나는 특별히 한 것도 없고 멀리 내다보거나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평화가 나를 에워싼다.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다. 내 삶은 하느님 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토머스 머튼,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 159쪽)

 




토마스 머튼의 심중 고백의 말이 개울물 소리처럼 가슴으로 흘러들어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있는 시간에 대해서 법정스님도 비슷한 얘기를 하십니다. 


"밝아오는 여명의 창에 눈을 두고 꼿꼿이 앉아 소리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하루 일과 중에서도 나는 가장 사랑한다. 이런 시간에 나는 내 중심에 있다. 그리고 밝은 창 아래 앉아 옛글을 읽는 재미 또한 내게서는 빼놓을 수 없다. 그 속에는 스승과 친구가 있어 내 삶을 시들지 않게 한다."(법정스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중에서)


그리고 법정 스님은 저서 곳곳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종종 고백하십니다.

 

"일을 하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시간이 내게는 가장 충만한 시간이다."


조용히 가만히 머물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고요한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충만한 시간임을 토마스 머튼과 법정 스님의 심중 고백을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점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정일 테고요. 법정 스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우주 자연 만물을 두었습니다.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늘 감사하며 감탄하며 일생의 삶을 통해 무소유의 나무를 닮아가신 법정스님.


법정 스님은 그러한 순간을 두고, 텅 빈 충만이라고 얘기합니다. 토머스 머튼은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어느 지점에 계신가요? 


하루의 일과 중 잠시 멈추어 가만히 머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머물러 숨을 고르는 시간. 저는 그 시간 속의 시간을 두고서 고독의 사랑방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한 점이 되는 충만한 시간. 


눈을 감으면 어둡습니다. 스스로가 낮아지고 작아지고 가난해져 한 알의 씨앗이 된 그 마음 자리에 들숨처럼 저절로 채워주시는 그 충만한 시간.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은총의 시간은 해처럼 공평해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posted by

섬년에서 촌년으로

  • 언젠가는 배달의 민족이 드론을 통하여 짜장면을 배달하는 날이 오겠죠.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27 14:49
    • 그보다는 이 땅 구석구석 다함께 잘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희철 2020.01.28 06:52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4)

 

섬년에서 촌년으로

 

짜장면이 배달되는 곳에서 살았으면. 오지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의 바람이 의외로 단순할 때가 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첫 목회지였던 단강도 예외가 아니어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짜장면이 오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곤 한다.

 

강화서지방에서 말씀을 나누다가 한 목회자로부터 짜장면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섬에서 목회를 해서 당연히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옮긴 곳이 강화도의 오지 마을, 그곳 또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란다.




목사님의 딸이 학교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그랬단다.

“섬년에서 촌년으로 바뀌었구나!”

 

고맙다, 짜장면도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버티는 모든 사람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밝은 눈  (2) 2020.01.29
치명적 농담  (2) 2020.01.28
섬년에서 촌년으로  (2) 2020.01.27
빛바랜 시간들  (2) 2020.01.22
초승달과 가로등  (2) 2020.01.22
북소리가 들리거든  (2) 2020.01.22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