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텅 빈 하늘을

신동숙의 글밭(74)

 

내 안에 텅 빈 하늘을

 

내 안에 텅 빈 하늘을
진리의 말로 채울 수 있다면
진리의 숨으로

촘촘한 말의 그물망에 매여
내 영혼 진리의 숨 안에서만
온전히 자유하도록

그러고도 빈 하늘이 있다면
이 또한 사랑의 빛으로 채워지기를

내 영혼의 목마름은
한 순간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기에

울컥 샘물이 넘쳐 흐르면
그 눈물 한 방울씩의 좁은 물길을 따라서
말과 숨으로 있는, 진리의 사랑으로 흐르기를

 

 

 

 

여기저기서 토하듯 쏟아내는 정보와 책의 홍수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참된 길을 잃지 않고, 제 마음의 중심을 잡고서 일상을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걷는 구도와 순례의 여정에 좋은 스승과 좋은 벗과 좋은 책이 있다면, 자연 속에서 함께 걷는 그 순례길은 얼마나 든든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좋음과 좋음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가 좋은 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내 앞에 아무리 꽃길이 펼쳐져 있을지라도 나 자신이 작은 두 눈을 감아버린다면 세상은 온통 어둠 뿐일 테니까요. 진리 안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 곧 참자아(본성, 영성, 불성, 근본, 하느님, 하나님), 하나의 님을 바로 알아가는 첫걸음임을 늘 기억하려 합니다.

 

동서고금 종교를 초월한 선현들에 기대어 제 나름의 좋은 눈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사리사욕의 구름을 걷어낸 청결한 눈이 좋은 눈입니다. 둘째는 교만의 허상을 걷어낸 겸손한 눈이 좋은 눈입니다. 셋째는 거짓을 미워하며 진실과 진리를 사랑하는 눈이 좋은 눈입니다. 그런 좋은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로 보기를 원하는 마음에 깃든 사랑은,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그런 온전한 사랑일 것입니다.

 

모두가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일을 통해, 구도와 순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소박한 일상에서 스스로가 감사와 기쁨과 기도로 깨어서, 매 순간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일상은 천국이 될 테고요. 그 평등한 영성의 씨앗은 우리 모두의 가슴마다 공평하게 주어진 양심입니다. 그 씨앗이 자라서 제 영혼의 숨을 쉬며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를 갈망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이 또한 구도의 삶, 가치와 의미를 먹고 사는 영혼이 성장하는 걸음일 테고요.

 

그 구도의 걸음에 채워지지 않는 막연함과 공허함으로 흔들리고 있다면, 기꺼이 함께 흔들리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뻐하기 위해 낮은 마음으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좋은 스승과 좋은 벗으로 삼고서 동행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얘기를 드릴 수 있는, 제 내면의 맑은 울림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냥 좋다는 단어만로는 충분치 않은 글모음이라는 심중 고백을 드립니다. 인내와 끈기와 사랑으로  맺은 또 하나의 결실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 말씀을 묵상하시는 김기석 목사님의 고요한 모습을 그리며, 따라서 제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낍니다. 또 하나의 행복은 그 고요함에 깃든 평온함에도 있으니까요.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천주교인이든 일반인이든, 누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잠깐 머물러 성경을 통한 구도의 길을 걷기를 원하시는 분들께 권하기에 맞춤입니다. 그리고 학자와 작가, 농업인, 주부와 학생들에게도 진리 안에서 자아탐구를 위한 구도의 길을 걷는 걸음에 나란히 놓아드리고 싶은 좋은 스승과 벗이 되는 좋은 책입니다.

 

시집 크기의 묵상집이지만, 그 두께가 두꺼운 모습에서 하루 하루를 묵묵히 걸어온 구도자의 성실함이 엿보입니다. 책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180도로 활짝 펼쳐도 낱장이 떨어지거나 막힘이 없도록 실로 엮어서 책이 제본되었다는 점에서 한 올 한 올에 깃든 정성을 봅니다. 성경과 함께 걷는 묵상의 순례길마다 선물처럼 주어지는,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들과 수많은 양서들과 더불어 익은, 맑은 한 영혼이 길어올린 묵상의 열매들로 풍성한 산책길이 될 것입니다.

 

이미 그전의 저서들로 만나본 김기석 목사님에게서 맑고 깊고 고요한 영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 자신을 때때로 그 맑은 글을 거울 삼아 비추어 봅니다. 탐욕과 교만으로 살찐 마음과 눈을 현혹시키는 온갖 허상들로 가려진 시선이 맑게 씻기우기를. 제 영혼의 숨이 길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젖은 종교 생활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종교 생활인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 거듭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때론 독선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 받고 있는 안타까운 기독교를 봅니다. 그 속에서 발견한 숨은 보화 같은 김기석 목사님.

 

석간수처럼 맑고 깊고 고요한 영성의 샘물을 발견한 기쁨을 잔잔한 음성으로 조용히 전하며 소중한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하나님의 숨을 기다리며>. 묵상집과 함께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거칠어지기 쉬운 영혼의 숨결을 고르는 고운 걸음이시기를요. 진리 안에서 열린 마음으로 고요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목회자가 있다면, 행복한 순례길이 될 것 같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묵상글은 진흙탕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 영혼이 마실 수 있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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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

  • 저도 '스미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햇살처럼, 물처럼 그렇게
    어느 생명도 아프지 않게
    공평하게 적시는 말 같아서요.

    신동숙 2020.02.08 08:42
    • 스미다,
      물들다,

      가만가만 다가오는 말들이지요.

      한희철 2020.02.09 12:54 DEL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2.09 03:14
    • 한결같음이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2.09 12:55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4)

 

스미다


 
식물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기도 하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새롭게 보였다. 목양실 안에 있는 몇 몇 화분 중에는 난도 있는데, 어느 날 보니 난 화분이 물을 담은 양동이 안에 들어가 있었다. 사무실의 장집사님이 한 일이다 싶은데, 난 화분에 물을 주는 대신 화분을 물에 담금으로 물이 스미도록 한 것이지 싶었다.

 

 

 

 

난 화분에 물을 부어주는 것과 물이 스미도록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단번에 쏟아 붓는 것보다는 조금씩 스미도록 하는 것이 난에 필요해서 그리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난 뿐일까? 믿음도, 은혜도, 함께 나누는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단번에 넘쳐나도록 쏟아 붓는 것보다는 시간을 잊고 알게 모르게 스미는 것, 그것이 더 그윽하고 유익하고 오래가는 것 아닐까, 양동이에 담겨 있는 난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스미다’라는 말이 마음으로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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