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놓아라

  • 내어 놓아라~!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3.08 10:4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16)

 

내어놓아라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어둠 속에서 손을 모을 때, 가느다란 한 줄기 빛처럼 지나가는 세미한 음성.


"내어놓아라."


무슨 말일까 되짚어보니 내려놓아라가 아닌 내어놓아라.


힘들고 어려울 때면 내려놓을 줄만 알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 내려놓는 일 쉽고도 당연했는데, 세미하게 다가온 음성일랑 내어놓아라.


네 손에 들고 있는 눈 밖에 난 것만 내려놓지 말고 안에 감추고 있는 것, 애써 모른 척 하는 것 내어놓으라고.


그게 자유로워지는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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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해 이어지는 생활치료센터 개방

신동숙의 글밭(100)

 

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해 이어지는 생활치료센터 개방

 

늘어나는 확진자의 격리 치료를 위해서 3월 3일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한티 피정의 집'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기로 한 것을 처음으로, 연일 이어지고 있는 따스한 소식들이 봄바람을 타고 들려옵니다.

 

'3월 3일, 천주교대구대교구(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급증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 치료를 위해 '한티 피정의 집'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기로 했다.(매일신문)

 

3월 4일, LG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병상 부족사태를 돕기 위해 기숙사와 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한다. 총 550실로 단일 기업 지원으로는 최대 규모다.(파이낸셜뉴스)

 

3월 5일,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경기도 파주시 오산리에 있는 영산수련원 2개 동을, 사랑의 교회는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수양관과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제천기도동산을, 광림교회는 경기도 포천시의 광림세미나하우스를 각각 제공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수용 인원을 비롯해 절차와 방식 등은 보건당국과 협의한다는 방침이다.(기독일보, 한계레 신문, 국민일보)'

 

 

 

LG 기업의 앞선 사회적 나눔과 선행은 예전부터 정평이 나 있던 터입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 연수원이 물 좋고, 공기 좋은 자연 속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경증 확진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로선 좋은 환경이라는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로부터 시작한 예수의 섬김과 나눔이 다음날 대기업의 LG로 이어지고, 또 그 다음날 대형 교회로까지 이어진 소식입니다. 지난해 2019년의 촛불 집회 때 주변의 카페와 주유소 등지에서 집회 참가 국민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한 것과 대조적으로 서리 맞은 꽃봉우리 마냥 이웃을 등지고 문을 꼭꼭 닫아두었던 대형 교회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선 그들의 수양관을 개방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동안 일부 노선의 한국 기독교가 영성의 성장과 이웃을 향한 예수의 섬김보다는, 종교를 마치 정치와 대기업인줄로 착각하고 덩치만 키워온 대형 교회들입니다. 그동안 자행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갈길이 멀지만, 이번에 수양관을 개방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보여주기 위한 한시적인 쇼맨쉽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섬김과 나눔의 첫발걸음이기를 소망합니다. 예배당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천국행 방주가 아니니까요. 어디까지나 예배당과 인격 성전인 교회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예수의 섬김과 사랑을 실천할 때에만 존재의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하루 동안에도 기부와 나눔과 섬김의 따스한 소식들이 전국 곳곳에서 봄바람처럼 불어옵니다. 초반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한국 상륙으로 인해 온 나라가 두려움에 얼어 붙었던 마음들이 이제는 서서히 봄햇살에 녹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들이 더 커다랗게 다가옵니다.

 

사랑의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깊이 골수와 마음 속까지 봄햇살처럼 침투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신종 플루로 고열에 시달리는 모습이 하도 애처로워서, 품에 꼬옥 안고서 재우곤 했습니다. 전염의 두려움 쯤은 사라질 만큼 사랑의 체온과 손길은 위대하다는 걸 그렇게 몸소 느끼곤 했습니다.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봄햇살처럼 따스한 춘삼월입니다. 이제 목련꽃봉우리가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덕분인지 모처럼 봄하늘이 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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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수 곁에 깨어 있겠습니다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15)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 수난곡

No. 15 나의 예수 곁에 깨어 있겠습니다

 

마태 수난곡 1부 25번~26번

음악듣기 : https://youtu.be/l9ko3aqSusg

코멘트

&

코멘트

19(25)

테너 레치타티보

&

코랄

SOLO

O Schmerz!

Hier zittert das gequälte Herz!

Wie sinkt es hin, wie bleich sein Angesicht!

 

CHORAL

Was ist die Ursach' aller solcher Plagen!

 

SOLO

Der Richter führt ihn vor Gericht,

da ist kein Trost, kein Helfer nicht.

 

CHORAL

Ach, meine Sünden haben dich geschlagen!

 

SOLO

Er leidet alle Höllenqualen,

Er soll vür fremden Raub bezahlen.

 

CHORAL

Ich, ach Herr Jesu, habe dies verschuldet,

Was du erduldet!

 

SOLO

Ach! könnte meine Liebe dir,

Mein Heil dein Zittern und dein Zagen

Vermindern oder helfen tragen,

Wie gerne blieb' ich hier!

 

솔로

오 그 고통이여!

괴로움에 떨고 있는 당신의 마음!

쓰러져 버린 당신, 창백해진 당신의 얼굴!

 

코랄

그 모든 괴로움은 무엇 때문입니까?

 

솔로

심판자가 그를 법정으로 끌고 가네.

아무 위로도 없고 돕는 자 아무도 없네.

 

코랄

아! 그것은 나의 죄, 내 죄가 당신을 매질했습니다.

 

솔로

그 홀로 외로이 지옥의 모든 고통을 견디시니

이 이름 모를 강도 위해 죄 값을 치루고 계십니다.

 

코랄

오! 주 예수여, 당신이 짊어지신 그 고통,

나의 죄 때문입니다.

 

솔로

아아! 나의 구원이여, 만일 나의 사랑이

당신의 떨림과 두려움을 사그라들게 할 수 있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기꺼이,

기꺼이 여기에 머무르겠나이다.

기도

&

코멘트

20(26)

테너 아리아

&

합창

SOLO

Ich will bei meinem Jesu wachen

 

CHOR

So schlafen unsre Sünden ein

 

SOLO

Meinen Tod büßet seiner Seelen Not

Sein Trauren machet mich voll Freuden.

 

CHOR

Drum muß uns sein verdienstlich Leiden

recht bitter und doch süße sein.

솔로

나의 예수 곁에 깨어있겠습니다.

 

합창

그리하면 우리 죄가 잠들어 버릴 것이라네.

 

솔로

예수의 마음의 괴로움이 나의 죽음을 대신하고

예수의 슬픔으로 인해 내게 기쁨이 채워집니다.

 

합창

그러므로 그의 수난의 공로가

우리의 슬픔과 동시에 기쁨이 되어줍니다.

 

 

겟세마네로

 

지난 시간에 만나 보았던 마지막 부분은 예수의 대사 “Meine Seele ist betrübt bis an den Tod/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시는 부분부터 현악 모든 파트가 8분 음표 연음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이 8분 음표 연음들은 고민하고 슬퍼하는 가운데 요동치기 시작하는 예수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만나게 될 테너의 레치타티보 ‘O schmerz!/오 그 고통이여!’로 이어지면서 8분 음표 연음은 ‘둥둥둥둥’과 같은 소리로 16분 음표로 바뀌어 두 배 의 속도로 빨라집니다. 우리도 모르게 점점 격하게 박동하는 심장소리처럼 이 리듬들은 그렇게 우리 모두를 주님의 고민과 슬픔으로, 겟세마네의 기도로 끌어들입니다.

 

마태 수난곡과의 첫 만남

 

겟세마네에서 고민하고 슬퍼하신 예수의 모습에 이어지는 테너 레치타티보&아리아와 코랄은 마태수난곡의 명곡 중 하나입니다. 또한 저와 마태수난곡을 처음 만나게 해 주었던 매우 의미 깊은 곡입니다. 음대 성악과 학부시절 2학년 즈음에 선택과목으로 종교가곡을 수강했습니다. 원래 목회자의 길을 꿈꾸던 사람이 음악대학에 입학한 후 신앙과 삶과 노래의 완벽한 조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어느덧 조화가 아닌 그 세 가지의 화해를 위해 발버둥 쳐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발버둥의 일환으로 연습실만큼이나 중앙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종교학과 수업이나 종교가곡 등 특이한 수업을 수강했었습니다. 특히 종교학과에서 개설된 수업에서는 저의 신앙이 낱낱이 해부되는, 당시로서는 매우 끔찍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 와중에 이 곡이 종교가곡 수업 시간에 저의 과제 곡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바흐 그리고 마태수난곡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구레네 시몬처럼 말입니다. 당시 음대에서는 화려한 오페라 아리아나 선율이 유려한 가곡이 성악과 내에서 유행가처럼 불리어졌고 상대적으로 난해하고 엄숙하며 가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부르기 힘든 바흐의 음악에 관심을 둔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낯선 과제곡이 불만이었지만 이 노래를 연습하면 할수록 묘한 이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마태수난곡 전곡 악보를 구했고 전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훨씬 나중이 되었지만 바흐와 마태수난곡은 신앙과 삶과 음악이 본디 하나였음을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아무튼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그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 그 고통이여

 

레치타티보의 반주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저음부의 현악파트는 전점 빠르게 고동치는 예수의 마음, 그리고 그 기도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주의 상성부를 들어 보시면 목관악기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각기 2개의 플롯과 오보에들이 내는 스산하고 불편한 화음은 긴장과 떨림이 응축된 겟세마네의 새벽 공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 곡의 성악파트는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테너 솔로와 합창이 번갈아 나옵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파트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로 겟세마네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예수입니다. 테너 솔로는 보다 가까이에서 그 기도를 바라보며 감성적으로 동참하고 있고 합창은 그 뒤에서 그 둘을 바라보며 추임새를 넣고 있습니다. 테너 솔로가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에 대한 코멘트라면 합창은 이 코멘트에 대한 또 한 번의 코멘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세 명의 제자들은 예수의 괴로움을 모른 채 곁에서 잠들었지만 테너 솔로는 최대한 그의 곁에서 그의 괴로움과 슬픔을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아파하고 회개하고 안타까워 할 뿐이지요.

 

테너의 노래 사이사이에는 코랄합창이 ‘그 모든 괴로움은 무엇 때문입니까?-그 것은 나의 죄 때문입니다.-나의 죄가 당신을 매질했습니다.’라고 세 번에 걸쳐 코멘트를 하고 있습니다. 장면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신앙적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테너는 ‘기꺼이’라는 의미의 ‘gerne/게르네'를 세 번 반복하면서 이제는 졸지 않고 예수 곁에 머무르겠노라고 다짐함으로 레치타티보를 마무리 합니다.

 

 

 

독일 엘트빌레(Eltville) 성 페터와 파울 교회의 외부 조각

 

나의 예수 곁에 깨어 있겠습니다

 

레치타티보에 이어 애절한 음색의 오보에 솔로와 함께 테너 아리아가 시작합니다. 오보에의 노래는 테너 아리아의 주위를 맴돌며 그의 기도에 공감하고 동참하고 위로하는 한 마리 검은 나비의 윤무와도 같아 보입니다.

 

아리아의 내용은 ‘나는 나의 예수 곁에 깨어 있겠습니다/Ich will bei meinem Jesu wachen’라는 기도와 다짐의 노래입니다. 테너 노래의 사이에서 들리는 합창은 ‘그리하면 우리의 죄는 잠들어 버릴 것이네/So schlafen unsre Sünden ein’라고 대답합니다. 테너 솔로는 깨어 있겠노라고 노래하는데 합창의 선율은 마치 자장가와 같이 들립니다. ‘예수 곁에 깨어 있을 때 우리의 죄가 잠들게 된다’는 역설적 메시지입니다. 바흐와 피칸더의 신앙적, 문학적 구성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 아리아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Sein Trauren machet mich voll Freuden/예수의 슬픔으로 인해 나에게 기쁨이 채워집니다.’라고 노래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슬픔을 뜻하는 ‘Trauren’과 기쁨을 뜻하는 ‘Freuden’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바흐는 이 가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Trauren’은 고음으로 짧고 굵게 처리한 반면 ‘Freuden’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악절을 사용해서 그 의미를 음악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Trauren/슬픔’을 표현한 부분

 

         ‘Freuden/기쁨’을 표현한 부분

 

 

예수께서 첫 번째 베푸신 기적이 갈릴리 가나에서 망쳐질 수밖에 없었던 혼인 잔치를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신 것이었는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죽음의 슬픔을 겪으심으로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아픔과 그 사랑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 잠이 옵니다. 그처럼 교회에서 값싼 은혜가 남발되는 동안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 양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그는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통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깊이 머무르며 늘 깨어서 그의 곁에서 그의 마음과 함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현재 이천중앙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며 중앙연회 사모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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