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두 모금을 마신 사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4)

 

물 두 모금을 마신 사람

 

군 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이야기가 있다. 가뜩이나 요령이 없는 터에 그 이야기는 요령을 필요로 할 때마다 떠올라서, 더욱 요령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게 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야기가 갖는 힘인지도 모른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 기차를 탔을 때였다. 우리를 인솔하던 장교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사막에서 전투를 벌이던 한 소대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물이 모두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사막에서 전투 중 물이 떨어지고 말았으니, 총알이 떨어진 것과 다를 것 없는 위기였다.

 

그때 한 병사가 어디론가 기어가 물을 구해왔다. 그가 구해온 물은 수통 하나였다. 지칠 대로 지친 30여 명의 소대원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소대원들은 수통을 돌려가며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장교가 그 대목에서 우리에게 물었다. 모두가 물을 한 모금씩 마셨는데 두 모금을 마신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두 모금을 마신 사람이 누구였겠느냐는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에 훈련소 생활을 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30 여명의 군인들이 수통 하나의 물을 모두 마셨다는 이야기 자체가 뜻밖인데 그 중 두 모금을 마신 사람이 있다니, 이야기가 허황되게 여겨졌다. 물을 떠온 사람이라는 대답도 있었고, 소대장일 거라는 대답도 있었는데, 나로서는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물을 두 모금 마신 사람은 맨 마지막으로 마신 사람이었다. 대답을 들을 때 마음속을 지나던 떨림은 오래 남았다. 마지막 사람이 두 모금을 마셨다는 것은 앞서 마신 사람들이 물을 아꼈다는 것,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갈증 속에서도 뒤에 있는 전우들을 위해 겨우 입술만 적시고는 수통을 넘겼을 것이었다.

 

남이 알지 모르는 곳에서 혼자서 빵을 먹는 법을 배워야 하고, 없어진 물건을 남에게서 가져오는 것을 위치 이동쯤으로 여기는 법을 배워야 살아남을 것 같은 군대생활이었으니, 우연히 들은 그 이야기는 내내 마음을 괴롭힐 만 했던 것이다.

 

문득 그때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마스크 때문이다.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이 시절, 요일제를 만들어 비가 오는 중에도 약국 앞으로 긴 줄이 만들어지는 이 진기한 때, 내 뒤에 있는 이를 위하여 입술만을 적시고는 수통을 넘긴 사막 병사들의 마음을 우리가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사막 병사들의 마음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이 어려울 때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우리 삶이 제 아무리 풍요롭다 해도 우리 사는 이 땅은 사막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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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을 먹으며 '가난'을 얘기했다가

신동숙의 글밭(108)

 

짬뽕을 먹으며 '가난'을 얘기했다가

 

딸아이는 제 방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고, 아들은 쇼파에 늘어져 텔레비젼을 보고 있고, 엄마는 책을 읽는 둥 페이스북을 하는 둥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아차 싶어서 거실로 나서며, "얘들아~ 우리 뭐 먹을까? 우리 이러다가 굶겠다. 다 모여봐." 방에서 튀어나온 딸아이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배달의 민족에서 자기가 주문을 할 테니, 매뉴를 정하자며 의견을 냅니다. 퇴근해서 돌아올 아빠 몫까지 모처럼 중국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짬뽕 곱배기, 볶음밥, 짬짜면, 탕수육 소자.

 

온 가족이 거실에 있는 원목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낮에 눈물을 흘리면서 본, '설악산의 짐꾼 아저씨'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자녀들에게 들려줘야겠다 싶어서 가만가만 얘기를 꺼냈습니다. 짬뽕을 먹으면서, 짐꾼 아저씨의 나이는 50세를 조금 넘겼고, 키는 157센티, 몸무게는 60키로 남짓이라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16살 때부터 설악산 짐꾼을 하게 되었다는데, 지게에 지고서 한 번에 나르는 짐의 무게가 80~130키로, 냉장고까지 지게에 지고 나른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려는데, 한창 음식을 먹고 있던 자녀들의 음성이 떠들썩 먹는 소리보다 높아집니다.

 

딸아이는 "말도 안돼! 왜 그렇게 살아야돼!" 물론, 엄마가 꺼낸 얘기는 상식적인 삶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30년이 넘도록 일년에 300일을 한결같이 짐꾼 아저씨가 살아온 삶을, 제 몸무게보다 무거운 지게 짐을 지고서 설악산을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기다리고 있을 상인들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탕수육을 찍어 먹으면서,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한 달에 버는 돈은 150만원 정도, 그 돈에서도 뚝 떼어서 고아원 같은 곳에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며.. 이때 맞은 편에서 짬뽕 국물에 막걸리를 마시던 남편의 목소리가 바윗돌처럼 단단해져옵니다.

 

"가난은 좋은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정당하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부자가 된다는 희망을 줘야지. 남을 돕는 것도 일단은 내가 부자가 되고 나서 그 다음에 도와주면 되는 거다. 부자는 나쁘다는 것도 편견인 것처럼, 이 세상에 모든 사람 속에는 선하고 악한 게 다 섞여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거고...", 그러면서 남편이 미국의 월스트리트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라에, 저는 시리아의 내전 때 주가가 올라간 상황을 두고 환호성을 친 월스트리트에서 악마를 보았다는 지성인도 있다며, 말을 받았습니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다가, '가난'을 얘기하는 엄마는 그렇게 공공의 표적이 됩니다. 순간 싸늘해져도 그렇다고 아무도 젖가락질을 멈추진 않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저녁식사 자리가 전쟁터가 되지 않도록 한 걸음 늦추고 조용히 먹으면서 수그러들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귀에 익어서 식상하리만치 별다른 감흥도 주지 못하는 얘기를 혼잣말처럼 기어이 뱉어낼 뿐입니다.

 

 

 

 

이처럼 한 식구가 둘러앉은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부유함'이 아닌, '가난'에 대한 얘기는 그렇게 불온한 불순물이 됩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한 걸음 더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주일날 예배의 자리에서 목회자가 '가난'을 주제로 삼고, 가난을 대상이 아닌 내 삶의 주체로 삼자는 권고의 설교를 하게 된다면, 그런 예배당에선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흔히 교회 안에서 전하는 설교와 기도의 제목으로 삼는 것은, 가족의 건강과 안락과 자녀의 영육간의 장성함과 출세와 사업의 번창함과 온갖 부귀와 소원 성취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도 부유해서 천국의 삶을 확장하는 것이 기도 제목이 됩니다. 그리고 한 주에 한 차례 선교비를 조금씩 모아서 선교지로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선교가 됩니다. 이런 모습이 제가 몸 담았던 상식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신약 성서에서 본 예수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우리 가정과 교회의 상식선과는 분명 다른 노선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제 가슴팍은 흔들리며 실선처럼 좁은 틈이 생겨납니다.

 

종파를 초월해서 가난에 대한 설교를 들어본 곳이 있습니다. 서울시 성북동 길상사 법정스님의 법문입니다. 잠시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자야.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은 후,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영한 여사의 십 년 동안의 끈질긴 권유 끝에, 요정 대원각은 <무소유>의 법정스님을 통해서 길상사라는 절이 되었습니다. 길상사의 첫 법문을 설하는 자리에서 법정스님은 그 뜻을 곤고히 다지셨습니다. "나는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평소 스님의 무소유 정신에 마음이 열린 불자들 사이에서도 법정스님의 선언은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가난을 쉽게 받아들이기엔 저부터도 일상의 삶에서 걸리적거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스님을 따르지만 저녁밥상 자리에선 그리 간단치 못한 것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이미 고속 경제 성장으로 바쁘게 생활을 꾸려온 신자유주의의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번영과 부를 축원하는 말씀이 곧 우리가 듣고 싶은 새해의 덕담이자 주일 설교이자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머리가 혼돈스러워집니다. 가슴이 흔들립니다. 자녀를 위해 천일기도 치성을 드리려고 새벽 잠을 설쳐가며 절에서 새벽예불을 드리는 부모에게도, 가족을 위해 교회에서 새벽기도의 재단을 쌓는 부모에게도, 가족의 영육간의 건강과 안락과 부유함을 위한 기도는 너무나 상식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녀를 위한 기도는 부모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이라는 여담도 있습니다.

 

저는 집에서 주일날 설교 말씀과 스님의 법문 말씀을 유튜브로 그때 그때 번갈아 가며 듣곤 합니다. 그외에도 좋은 강연을 찾아서 듣는 것이 소소한 배움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들을 때면 드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은 완성이 아니라, 씨앗이다.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그 말씀에 감동의 전율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고 해서 그 말씀이 바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감동이 되면 제 말인 것처럼 착각했던 점입니다. 듣거나 책에서 읽은 말씀은 씨앗일 뿐, 마음밭에 뿌려진 씨앗을 일상 속에서 키우고 가꾸며, 말씀이 육신이 되는 체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설교와 법문을 통해 마음밭에 뿌려진 '부유함'의 씨앗과 '가난함'의 씨앗이 자라는 모습을 늘 대조해서 번갈아 가며 보려고 합니다.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의 힘이기에, 부유함을 기도하면 부유하게 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합니다. 또 큰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가난을 기도할 때 가난한 삶으로 흘러가는 것은 또한 당연한 결론일 것입니다. 동일한 에너지의 파동끼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용을 하면서 서로를 끌어당기니까요.

 

그러면서도 가난 앞에 한 단어를 더 붙이려고 합니다. 자발적 가난함. 그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안락함과 부유함으로 굳어지려는 제 가슴팍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이 맑은 샘물처럼 마시는 분들은 고독과 침묵과 가난을 사랑하며 살다가신 별처럼 빛나고 있는 분들입니다. 법정스님과 법정스님의 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승들인 본 회퍼, 사막의 교부들, 성 프란치스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렇게 자발적 가난과 맑은 영혼으로 살다가신 분들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여동생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동생의 대답은, "아마도 가난한 시인이나 선생이 되었겠지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공식은 예수의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입니다. 만약에 그 공식을 적용해서 자녀들이 학교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갖고, 직업을 만들고,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아마도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흔들리고 갈라진 가슴팍 좁다란 틈새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에 고요히 숨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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