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과 다석(多夕)

신동숙의 글밭(141)


박꽃과 다석(多夕)


강변에 유채꽃이 피는 무렵, 올해는 마당에 박모종 셋을 띄엄띄엄 심었습니다. 지난해 돌담 아래에 심은 박모종 둘은 그 뿌리가 녹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심지도 않았는데 씨앗으로 번진 꽈리와 깻잎이 보다 더 웃자라면서 박모종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지난해에는 박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딸의 안타까운 얘기를 곁에서 들어오시던 친정엄마가 장날에 부지런히 박모종을 구해다 심으신 것입니다.
 
쓸쓸함이 속으로부터 밀물처럼 이는 저녁답이면, 순하고 하얀 박꽃만한 다정한 벗도 없습니다. 저녁밥 지을 무렵이면, 하루도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박꽃의 우정은 신실함입니다. 박모종 둘을 나란히 심어 놓으면 어느 하나의 줄기가 굵어지고 실해지면서 돌담 위로 번져갑니다. 돌담 위로 번져가는 줄기를 따라서, 초여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하얀 박꽃을 늦가을까지 매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 밤이나 그믐날 밤에도 어김없이 피었다가 해 뜰 무렵 갈빛으로 지는 박꽃입니다. 달맞이꽃처럼 달을 보아 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박꽃은 무엇으로 필 때와 질 때를 스스로 아는지 궁금하여 여전히 살펴 헤아리는 중입니다. 


저에겐 하루 중 가장 쓸쓸한 시간이 저녁답입니다. 해와 달이 교차하는 노을 앞에서 마음은 끝을 알 수 없는 허전함과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런 견디기 힘듦도 나이를 먹는지 언젠가부터 그 쓸쓸함을 영혼의 부름으로 해석하고부터는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고 편안해졌습니다. 애써 벗어나려 하거나 거부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요히 머물기로 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기도와 사색이 됩니다. 먼저 골방에 사우(師友)로 인해 춥던 골방이 이제는 따뜻한 골방이 된 것입니다. 


쓸쓸한 저녁답에 피는 하얀 박꽃이 다정한 벗이라면, 저녁별이 된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30대 초반에 책으로 만난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님입니다. 중학생 때 <인도 기행>이라는 책으로 만난 법정스님이 진리에 대한 빛을 보여주셨다면, 30대에 막 들어서면서 만난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제 안의 참나인 하나님과 진리의 영인 성령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박재순 <다석 유영모>, 현암사. 이 한 권의 책으로부터 받았던 놀람과 감동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더 많은 저서 읽기로 배움을 이어가지 못한 채 애꿎은 세월만 훌쩍 흘렀습니다.




올 여름과 가을까지 박꽃과 다석 류영모 선생님을 사우(師友)로 삼으며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낮에 본 돌담 밑에 박모종도 시들지 않고 잘 자라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듣는 다석 류영모 선생님의 강연은 중간에 쓸데없는 광고가 나오지 않고, 다음 강연으로 이어지니 하루일과 중 틈틈이 귀로 듣기에 마음이 즐겁고 유익하기만 합니다. 


말부터 앞세우는 경솔함이 내심 걸리지만 새로운 다짐으로 삼으려 합니다. 책장에만 꽂혀 있던 류영모 선생님의 제자인 박영호 <다석 전기>부터 하나씩 정독을 해나갈 설레임에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이보다 더 의미와 재미를 두루 갖춘 배움의 즐거움도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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