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마가복음 10:13-16)

 

어느 날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부탁했다. ‘쓰다듬다’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손으로 가볍게 쓸어 어루만지다’, ‘마음을 달래어 가라앉히다’이다. ‘쓰다듬음’ 혹은 ‘어루만짐’은 참 살가운 행동이다. 쓰다듬음은 상대에게 나의 사랑을 전달하거나 표현하는 행위이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의 등을 토닥여준다든지 어루만지는 행위는 얼마나 숭고한가? 그것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의 몸짓이다. 주님이 자기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기를 바랐던 이들은 예수와의 접촉을 통해 아이들의 삶도 아름다워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의 장벽에 부딪혔다. 제자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꾸짖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아이들을 쓰다듬는 것은 시급한 일도 아니고 중요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보고 노하셨다. 그리고 정색을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가복음 10:14) 어린이가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이’가 문자 그대로 어린이이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든, 예수님은 그들과의 접촉을 꺼리지 않으신다. 그들을 보듬어 안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어린이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어린이의 어떤 점이 그러하냐고 묻는다. 


류연복 판화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천진난만(天眞爛漫), 경탄, 호기심…. 오늘 우리가 보는 현실 속의 아이들이 그러한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이들’이라는 기호를 꾸밈없이 순수하고 참된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이면 된다. 아이들은 근엄하지 않다. 젠체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켜야 할 자기가 없다. 그래서 늘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어린이’를 잃어버린 채 산다. 삶이 무거운 것은 그 때문이다.

 

늘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는 사람들, 배울 것은 없고 가르칠 것만 있는 사람들,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익숙한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먼 사람들이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어린이성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내 가슴 설레느니,/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쉰 예순에도 그러지 못하다면/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유종호 번역). 부드러움은 생명의 징조이고 경직됨은 죽음의 징조이다. 워즈워스가 역설적으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기도*

 

하나님,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더께처럼 내려앉아 우리 영혼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경탄할 줄 모르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삶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은 이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은 우리 영혼에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십시오. 묵은 땅을 갈아엎고 기쁨의 씨를 뿌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가슴 설레는 일들이 많아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사랑의 레가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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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강아지똥>은 한국 자주 독립의 국보입니다

신동숙의 글밭(142)


권정생 <강아지똥>은 한국 자주 독립의 국보입니다


독립, 나라가 스스로 서는 일, 한국은 8·15 해방으로 독립을 맞이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나 스스로 서지 못하였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애통하게 여긴 바, 스스로 독립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한 것이 한국의 해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 후로 77년 생인 저의 개인 성장기에 비추어 보아도 한국은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후,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하여 부단이 걸어오고 있는 지금도 순례의 길 위에 있습니다.


제가 살던 부산, 옆집에는 장난감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본 동화책 전집의 색색깔 그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전집은 30여 년 뒤인 우리집 큰 아이의 책장에도 꽂혀 있게 된 여전히 동화책의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디즈니 시리즈입니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와 아기코끼리 밤비의 그림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1980년 대 일요일 아침과 평일 저녁에 텔레비젼을 틀면 나오던 만화영화 주제곡은 아직도 부를 수 있습니다. 아톰, 마징가Z, 들장미 소녀 캔디, 은하철도 999, 미래 소년 코난, 메칸더V, 개구리 왕눈이, 바람돌이, 빨강 머리 앤, 플란더스의 개가 일본의 만화인 줄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동생들은 피카츄, 토토로, 헬로 키티를 좋아하더니 스무살이 넘어서도 추억합니다. 


제 어린 시절의 동화, 동요가 온통 미국과 유럽과 일본의 번안·번역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글로 쓰여졌지만, 정신적으로 토착화 된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산과 들과 흙보다는 파랑새를 쫓던 먼 나라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긴 시절이 있었습니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예능들은 일본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습니다. 해방 이후 불과 20여 년 전까지의 체험들입니다. 문화 식민지 시절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이 제1회 기독교 아동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1969년에 출판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한국의 동화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안동의 외진 시골 마을 조탑리까지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계십니다. 허름한 양복에 낡은 가죽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매시고, 기차와 버스를 갈아 타면서 산길과 들길을 투박하게 걸어서 다니시던 이오덕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본 듯 독립 투사의 모습처럼 그려집니다. 해방은 되었으나 사상과 정신적으로 스스로 서지 못하는 나라의 설움이 그를 움직이게 하였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의 장남에게 권정생 선생님을 소개하기를. "안동에 가면 국보가 있다." 법정스님은 그의 저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 작가는 권정생이다." 권정생이라는 이름자처럼 한 사람의 바른 삶이 씨앗이 되어서 얼마나 많은 바른 일들을 하였는지, 그를 통한 은혜가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권정생은 어둔 세상, 어둔 가슴에 별이 된 이름입니다. 


<강아지똥>은 한국의 동화 출판업계의 베스트셀러 1위입니다. 2위, 3위가 외국의 번역·번안본인 것입니다. 막대한 외화가 외국으로 흘러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리의 산과 들과 흙 뭍은 가난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끄럽다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큰 잘못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세련된 서양식 옷차림과 신식 건물과 세련된 옷차림의 등장인물들을 우월하다 그린 사람은 분명 정신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에 <강아지똥>이 없었다면, 권정생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적으신 글은 낙서 한 장이라도 보물처럼 여겨 세상의 빛을 보게 하신 이오덕 선생님은 교사들의 스승입니다. 탄광 마을의 교사 임길택 선생님은 모든 우는 아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임길택 선생님은 저의 좋은 벗인 시노래 가수 박경하님의 5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다고 합니다. 탄가루에 하늘마저 아프던 어린 시절에 임길택 선생님의 시 수업이 희망이셨다고 얘기합니다. 오늘날 시노래의 뿌리가 되어주신 임길택 선생님의 삶과 동화와 동시는 지금도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감사하게도 작곡가 백창우 선생님이 국보 같은 세 분의 시와 글에 곡을 입혀 <노래 상자>를 만드셨습니다. 권정생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우리 집>, 이오덕 <노래처럼 살고 싶어>, 임길택 <나무 꼭대기 까치네 집>. 저 역시 자녀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혼자서 집안 일을 하며  권정생 선생님의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우리 집>을 들으며 맑고 따스한 눈물을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지인 두 분께 선물을 해드린 후 정작 제가 갖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사려다가 박경하 선생님과 함께 헤이리 예술 마을에 있는 백창우 선생님의 <개똥이네>에 가게 되는 날 같이 사기로 언약하였습니다.


저희 집에 두 자녀의 태교로 들었던 클래식과 서양의 영향을 받은 동요와 가곡들이 전부인 줄 알았다면, 저 또한 지금껏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지금보다 더 헤매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작곡가 백창우 선생님이 곡을 입히고, 굴렁쇠 아이들이 노래를 하여 발굴한 아름다운 한국말의 동요와 동시들이 한보따리가 됩니다. 백창우 작곡의 <예쁘지 않은 곳은 없다>, <딱지 따먹기>, <맨날 맨날 우리만 자래>, <또랑물>, <꽃밭>, <우리반 여름이>를 외울 정도로 들으며 두 자녀의 유년기를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암흑기에도 한글을 지키는 일은 한국의 얼, 정신을 지키는 일이 되었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한글은 목숨>, 일제강점기에 윤동주 시인이 한글로 시와 글을 적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자주 독립의 의미가 됩니다. 법정스님은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한국의 자연과 한글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저에게 한국의 산과 들, 자연과 한글은 다석 류영모 선생님이 얘기하신 참나, 얼나, 성령, 제 안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과 지도가 됩니다. 어릴적 귀에 익은 말 중에서 어린 아이들을 부르기를 '얼라'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의 한글은 캐면 캘수록 빛나는 보물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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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 흡연 범칙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4)


공공장소 흡연 범칙금


이야기는 마음속에 시간 속에 묻혀 있던 많은 기억들을 불러낸다. 운전 중 교통경찰에게 걸리면 면허증 뒤에 오천 원을 함께 건네던, 그러면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였다.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자 별별 경험담들이 이어졌다. 같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어 나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원주에서 단강으로 들어오는 길 중의 하나는 양안치 고개를 넘는 것이었다. 지금은 터널이 뚫리고 길이 시원하게 뻗었지만, 당시만 해도 구불구불 뱀 지나간 자리 같았다.

막 고개를 넘어서서 내리막길을 탔을 때 내 차를 가로막은 것이 느릿느릿 가는 트럭이었다. 나무토막을 지나칠 만큼 높이 실었는데 나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몹시 위태해 보였다.  코너를 돌 때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았다. 누가 봐도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다. 편도 1차선 도로, 저 앞에 마주 오는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추월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고개를 다 내려섰을 때 길가에서 내 차를 세우는 이가 있었다. 교통경찰이었다. 경찰은 내게 다가와 경례를 하며 말했다. 


“언덕을 내려오다가 추월을 했지요?”
“그랬습니다. 나무를 잔뜩 실은 차가 위태하게 가고 있어서요.”
“하지만 그곳은 추월금지구역입니다. 도로 가운데가 실선이잖아요. 교통위반 딱지를 떼야겠습니다. 면허증을 주시지요.”   


아우처럼 보이는 젊은 경찰과 말다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성격에 돈을 주는 것은 더욱 못할 일이었다. 선선히 면허증을 건넸다. 상황으로 보자면 얼마든지 다툼의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도 선뜻 면허증을 건네자 오히려 경찰이 당황하는 듯했다. 단속일지에 내용을 적던 그가 면허증을 보며 내게 물었다.


“부론면에 사세요?”


그렇다고 하자 자기 고향도 실은 인근이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양안치 고개 꼭대기에서 내 차가 추월하는 것을 보고 동료 경찰이 알려주어 단속을 했기 때문에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며 괜히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결국은 딱지를 뗐다. 면허증과 딱지를 건네며 그가 말했다.


“대신 제일 싼 걸로 끊었어요.”


며칠 뒤 원주에 나간 김에 범칙금을 내기 위해 은행에 들렀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지갑에 넣어두었던 딱지를 꺼내 훑어보던 나는 기겁을 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가 부과한 벌금은 5천원이었다. 벌금통지서엔 벌금사유가 적혀 있었는데, 사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공공장소 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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