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복음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2)


때로 복음은


어릴 적에 귀를 앓은 적이 있고, 그 일은 중이염으로 남았다. 의학적으로 맞는 소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동네 철둑너머에 있는 저수지를 찾아 물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 뜨거워진 철로 레일에 귀를 대고 물기를 말렸던 기억들이 있다. 하필이면 군생활을 한 곳이 105mm포대, 싫도록 포를 쏘기도 했으니 귀에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왼쪽 고막에는 작은 구멍이 생겼고, 드물지만 귀에서 물이 나올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일주일 가까이 귀에서 물이 나온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어서 그 일은 걱정이 되지 않는데, 정작 걱정이 되는 증세는 따로 있다. 양쪽 귀가 먹먹해진 것이다. 마치 솜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아 놓은 것처럼, 세상 소리가 차단당하는 것 같다. 어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말씀을 전해야 하는 목사로서 그와 같은 증세를 가볍게 여길 수가 없어 아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장로님이 이비인후과 원장님이시다. 언제라도 들르세요, 바쁘실 것 같아 남긴 문자에 기꺼운 답장을 주셨다. 


이리저리 상태를 살핀 선생님은 급성 염증이라고 했다. 지금의 상태가 가장 증상이 심할 때라고 했다. 주사를 두 대 맞았고, 약도 처방을 받았다. 모든 치료 끝에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 증세가 청력과도 관계가 있을까요?”


그 때 선생님은 단호하게 대답을 했다.


“아니요, 청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그 말이 내게는 복음처럼 들렸다. 주사보다도, 약보다도 그 한 마디 말이 내게는 더 절실했던 말이었다. 우리에게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붙잡아주는 한 마디 말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때로 복음은 구체적인 옷을 입고 우리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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