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울음소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8)


사라진 울음소리


또 하나의 땅 끝, 해남을 다녀왔다. 먼 길이지만 권사님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길이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가게 된 권사님이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기도를 하며,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한 터였다. 심방 이야기를 들은 원로 장로님 내외분이 동행을 했고, 권사님 한 분이 운전을 자청했다.


먼 길 끝에서 만나는 만남은 언제라도 반갑고 고맙다. 권사님이 새로 정착한 집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흔히 말하는 ‘이력’(履歷)의 ‘履’가 신발, 한 사람이 신발을 신고 지내온 길이라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권사님이 걸어온 이력을 듣는 시간이었다. 큰 아들로 태어나 자식이 없던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들어가야 했으니 단순한 이력은 아닌 셈이었다. 


일정을 모두 비워두고 우리를 기다린 권사님은 1박2일의 일정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며 해남 곳곳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덕분에 일몰과 일출이 아름다운 곳도 들렀고, 울돌목도 들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막아낸 명량해전의 격전지이다. 언덕 위 전망대에 올라서니 울돌목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급류가 흐르는 바다 위로 진도대교가 놓여 있었다. 


울돌목이란 이름이 인상적이다.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하여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한문 지명인 ‘명량’(鳴梁)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울 명’(鳴)에 ‘들보 량’(梁)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권사님은 울돌목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왜선을 울돌목으로 유인한 뒤 물에 잠가둔 굵은 쇠사슬을 양쪽의 소들이 끌게 하여 왜선들을 사슬에 걸려 침몰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느냐며,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하늘이 내신 분’이라고 감탄스러워했다.  




들려준 이야기 중에는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저 멀리 하늘 아래 가장 먼 산을 가리키며 그곳이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인데, 어릴 적엔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그곳까지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울돌목에서 나는 소 울음소리가 그렇게 멀리까지도 들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리가 놓인 뒤로는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사라져 더는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 없이 찾은 사람에게 울돌목이란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 바다일 뿐이지만, 역사와 내력을 아는 이들에게는 감회가 깊은 곳이 된다. 어릴 적 들었던 소 울음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권사님과 같은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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