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 작가님의 글이 내겐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심민호 2020.06.17 07:32

신동숙의 글밭(166)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반바지에 반팔 셔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학교에 갑니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누구나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서, 학교에 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교실 안에서는 제 책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저 푸릇한 귀를 열고서 선생님들의 말씀에 잔잔히 귀를 기울이겠지요. 특히 교실에서도 온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지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함은 다름 아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과 거듭 새기는 일이 됩니다. 옛어른들은 머리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그보다 더 앞선 옛어른들은 마음에 새겨 자신의 참마음과 세상의 참이치를 밝히는 공부를 참공부라 하였습니다. 참을 밝혀서 참된 도리를 지니며 살아가라는 공부. 마음을 챙기는 공부가 일생을 두고서 이루어가야 하는 선비의 참공부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자녀들의 이름자에도 밝을 예(叡)자를 두었습니다. 밝음은 깨달음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15세, 중학생이 되면 입지(立志)라 하여 뜻을 세우고, 자신이 태어난 뜻을 깊이 헤아려, 참된 삶을 살고자 배움을 꾸준히 이어가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선 먼저 심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안타까운 점은 그 심심함의 빈 자리를 핸드폰이 온통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영화와 웹툰과 친구들과의 소통 문자와 쏟아지는 정보들...


심심함의 여백은 하늘로 통하고 비로소 우주로 통하는 길이 됨을 핸드폰족인 포노 사피엔스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를 두고서 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내면으로부터 그러한 삶을 지향하고 있듯이, 자녀들에게도 넌지시 알려준 말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이치가 변함이 없듯이 참된 진리도 동서고금 변함이 없으니까요. 단지 구름에 가리워졌을 뿐, 하늘은 변함이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언제나 머리에 인 하늘처럼 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최근 부쩍 더워진 날씨에 저녁밥을 준비하다가 자녀들과 에어컨을 두고 언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 안 일엔 게으름을 피워도 작은 생각은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엄마입니다. 씨앗이 거목이 되듯이 모든 일의 시작은 작은 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재미보다는 의미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가 때론 개구쟁이 자녀들에겐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엄마보다 커진 키로 내려다 보며 아직은 모른다는 듯 눈을 끔뻑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엄마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자녀들 주위를 감도는 온갖 가치관들이 장마철에 하늘이 구름으로 다 가리듯 가리더래도 언뜻 보이는 맑은 하늘처럼 그렇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입니다.


비교적 선선한 저녁과 밤에도 에어컨을 틀자는 남편과 자녀들의 세 목소리는 단단한 세겹줄로 한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그에 반대해서 방마다 창문을 열고 샤워 후 선풍기만 틀어도 충분히 시원하다는 엄마의 한 목소리도 홀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에어컨의 문제는 단순히 소비전력만의 문제가 아님을 얘기하였습니다. 지구 환경 보호 차원까지 헤아려 보는 인생 가치관 전반의 문제로까지 설명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 식구들은 엄마의 바른말을 잔소리로 여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입으로 굽은 소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럴땐 엄마도 유순한 소리가 그립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딸아이는 날벌레가 들어올까봐 창문을 여는 것이 싫다고 합니다. 엄마는 방충망 보조 테이프로 창틀의 물구멍까지 막아두었으니 더 이상 벌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딸아이는 그냥 창문을 열고 있는 게 싫다고 합니다. 중학생인 것입니다. 하지만 흔히 요즘 말로 아무리 제 멋대로 중학생이라 해도, 입지(立志)를 세우기에 충분한 나이인 만큼 중학생의 온전한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청소년기의 혼돈스러운 터널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면서도 한 줄기의 빛, 바른 길을 보여 주어야 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강 옆에 있는 우리 마을의 저녁 공기는 시원한 편입니다. 오뉴월이 되고부터 오존주의보와 해제 문자 서비스를 간간히 받고 있는 엄마도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를 제외한 세 식구는 새벽이고 저녁이고 에어컨을 틀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대안으로, 아빠가 퇴근하고 오시면 에어컨을 틀어주겠다는 엄마의 뜻을 얘기하였습니다. 땀이 많은 아들도 거기에는 더 이상 이견을 달지 않습니다. 


아들은 운동을 다녀와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과일을 먹고 선풍기를 틀고 있으니 덥다는 말은 쑥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에어컨 논쟁의 말이 나오기 전에는 집에 오자마자 덥다며 쇼파에 앉아서 샤워도 미루고 에어컨부터 틀고서, 운동으로 흘린 땀을 에어컨 바람에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참에 땀이 많은 아들은 하루에도 샤워를 서너 번은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물이 좋은지 귀찮아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목욕 가운을 입고서 거실과 주방을 팽팽 날아다니기도 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 보면 다시 콧등에 땀이 송글 맺히기도 합니다. 땀이 난다고 투덜거릴라치면, 여름엔 땀이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주고는 엄마는 저녁밥을 합니다. 


코로나19로 5월 말부터 등교를 시작한 중학교에서도 중간 고사를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에어컨 논쟁을 하다가 끝에 가서, 시험 공부에 열을 올리는 딸아이에게 공부를 하는 이유를 넌지시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좋지 않은 기분에 곰곰이 생각치도 않고서, "돈 벌려고"라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 말이 화근이 될 줄은 저도 몰랐을 것입니다. 입지(立志), 뜻을 세워서 공부에 정진해야 하는 중학생 시절에 단지 돈벌이가 공부의 목적이라는 답변은 충분치 않은 것입니다. 엄마의 불편해진 심기는 딸아이의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 무렵 새해를 맞이하여, 초등학교 교실의 인터뷰에서, 꿈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건물주', '연예인'이라는 대답을 하던 어린 학생들의 말에, '그게 아닌데', '그게 삶의 온전한 모습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듯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지, 생각이 불어난 강물처럼 많아졌습니다. 


딸아이에게 단지 돈벌이가 공부의 목적이 된다면, 영·수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이 세상에 태어난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위해선, 성경, 불경, 논어, 중용 등의 경전부터 고전을 두루 읽고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거듭 뿌리는 씨앗처럼 말해 주었습니다. 엄마에게 듣는 말로는 그처럼 억울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엄마가 공부하란 말은 안하고, 공부에 열심인 자녀에게 오히려 공부를 하지 말고 학원도 안보내준다는 말을 하는 속뜻은, 현재의 열심을 멈추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공부의 의미를 거듭 깊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어제는 제주도에서 장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간밤에는 굵은 빗소리가 잠결에 들려오기도 하였습니다. 아침엔 딸아이에게 우산을 챙겨 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비는 잠시 그쳤지만 젖은 마당을 보더니 초록색 우산을 챙겨 들고 나갑니다. 이제는 언제 갑자기 비가 올지 모르니 대비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장마철인 것입니다. 비가 오는 저녁에도 그믐밤에도 박꽃은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다정한 벗입니다. 새벽녘에 잦아진 빗소리에도 뒷산 뻐꾸기 소리는 맑게 이어져 낮에도 간간히 들려옵니다. 학생들이 걸어가는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떠올리면, 마음으로 푸른 바람이 불어옵니다. 


녹음이 짙은 나무의 잎사귀들과 거미줄에 맺힌 이슬을 보고 있으면, 돈벌이가 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벌이가 주된 삶의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선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말과 생각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틈틈이 잠시 잠깐 세 끼니의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지만, 머리를 하늘에 두고 매 순간을 들숨날숨 하늘의 숨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머릿 속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생각이 또한 흐르는 강물과 다르지 않음을, 고요히 깊어진 작은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한 줄기 맑은 마음이 또한 외진 산골의 석간수와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솟아오르는 해를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참마음, 진리의 힘을 도저히 막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선조들의 맑은 흐름이 어린 자녀들의 가슴으로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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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말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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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빛으로 바꾼 한 말씀도 있지만,
빛을 혼돈과 공허와 어둠으로 바꾼 한 마디 말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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