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빠져들기

 기꺼이 빠져들기



“온전함은 다른 사람과 연결된 느낌, 우리가 사는 장소에 속해있는 느낌이며 공동체에서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무의식적 자각이다. 따라서 개인의 온전함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라는 두 가지 잣대로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가늠한다. 건강이란 분리되지 않은 상태임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웬델 베리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된 여러분께 인사를 올립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안이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두루 감싸주시기를 청합니다. 또 한 주가 이렇게 흘렀습니다. 절서는 속일 수 없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백로 절기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제법 시원합니다. 어떤 때는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한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어느 분이 여름에서 가을로의 이행을 헤비메탈의 시간에서 재즈의 시간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하더군요. 매미 울음소리 낭자하던 여름이 끝나고 벽 틈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노래가 고즈넉하게 들리는 계절이란 뜻일 겁니다.

다들 조금씩 지쳤지만 이럴 때일수록 소박한 기쁨을 많이 누려야 합니다. 나무에 내려앉는 햇살 한 줌에 눈길을 주고, 차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책상 옆에 놓인 리클라이너에 가만히 기댄 채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바흐의 ‘미뉴엣’부터 시작하여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습니다. 음악의 선율에 잠시 잠겨 들면 어수선하던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제가 생각났다며 좋은 벗이 보내준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곡도 즐겨 듣습니다. 어느 분이 정성껏 만들어 보내주신 다양한 아로마 향이 슬쩍 코끝을 스치면 잠시 행복하다는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문득 어떤 분이 문자를 보내 ‘나른할 때는 팔굽혀펴기 20번을 하세요. 맨손체조도~그리고 복근 운동’ 하고 말씀하시면, 씩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교우들의 얼굴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말투, 표정, 웃음소리, 기쁨의 순간들, 슬픔의 순간들...함께 걸어온 시간이 아득한 그리움이 되어 밀려옵니다. 켜켜이 쌓인 기억의 갈피마다 기가 막힌 세월을 함께 했다는 고마운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격절의 세월은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는 말이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게 합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교우들을 생각하며 화살기도를 올립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 시간을 그저 한탄만 하며 지내면 안 됩니다. 얼마 전부터 제가 종종 떠올리는 유대인의 안식일 기도가 있습니다.

“하루씩 지나가고 한 해씩 사라지건만, 저희는 기적들 사이를 장님처럼 걸어갑니다. 저희의 눈을 볼 것들로 채워주시고, 저희의 마음을 알 것들로 채우소서. 당신의 현존이 마치 번갯불처럼 저희가 걸어가는 어둠을 비추는 순간들이 있게 하소서. 저희가 어디를 바라보든, 떨기에 불이 붙었지만, 불에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도우소서. 그리고 당신께서 빚으신 흙덩이인 저희들이 거룩함에 닿게 하시고, 놀라움 가운데 ‘이 얼마나 경외로 가득한 곳인가’ 하고 외치게 하소서.”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시간은 ‘기적’입니다. 교회 화단에 심긴 붉은색 일일초가 파란 가을 하늘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언제 자리를 잡았는지 쥐꼬리망초, 영아자도 그 작은 꽃을 내밀었습니다. 파란색 달개비꽃도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대지를 응시합니다. 대추도 가을 햇살을 탐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기적의 시간을 교우들과 함께 누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한가한 소리 하고 있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어둠을 이길 힘은 빛을 향해 고개를 들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세상을 방편으로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세상을 이용합니다.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입니다. 그는 늘 외롭습니다. 욕망 주위를 맴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경이의 마음으로 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세상이 선물임을 늘 자각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응답해야 할 부름입니다. 그는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떨기나무 속에서 신성한 불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릴 때 우리는 죄의 중력에 속절없이 이끌리지 않습니다.

경외심이 사라진 곳에 깃드는 것이 불화입니다.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다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성난 얼굴들이 도처에서 출몰합니다. 사실과 상상력이 자리를 바꾸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온통 혼돈입니다. 거짓, 편견, 그릇된 확신, 미움과 저주, 악다구니, 혐오, 분노, 폭력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해와 소통을 위한 진득한 노력보다는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무모한 열정이 사람들을 마구 휘몰아 갑니다. 거친 말, 냉소, 선동의 말을 자주 듣다 보면 우리 마음은 묵정밭으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정녕 믿는 사람이라면 잠시 멈추어 서야 합니다. 내 입장과 주장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찬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주체적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이들이 주입한 생각과 관점과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런 상태를 일러 미성숙이라 했습니다. 미성숙은 자기가 되지 못한 것이기에 자기에게 빚진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이라는 책에서 “인간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리석음의 독무대”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어리석음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타락입니다. 미망에 갇힐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임을 잊게 마련입니다.

특정한 입장에 갇힐 때 광대한 세계, 신비한 실재는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신앙이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적 힘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 뜻에 조율된 존재가 되기 위해 엎드리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오만할 수 없습니다. 완고한 태도를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오류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기에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 거듭거듭 자기를 내려놓습니다. 자기를 비울 때 비로소 은총이 우리 속에 유입됩니다. 가을의 초입에 접어들면서 헤르만 헤세의 ‘고백’이라는 시를 우리 마음의 길잡이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다정한 빛살이여, 너의 반짝임에
기꺼이 빠져드는 나를 보라.
남들은 목적과 목표가 있지만,
나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해.

지난날 내 마음을 흔들던 모든 것들은
언제나 내 가슴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무한하면서도 유일한 것에 대한
비유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러한 상형 문자를 읽는 것은
언제나 인생을 걸어볼 만한 일.
영원한 것, 본질적인 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살고 있으므로.”
(헤르만 헤세, <인생의 노래>, 김재혁 옮김, 이레, p.148)

주님의 부름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 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백로 절기, 흰 이슬로 내리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 마음의 헛헛함을 씻어내 주시기를 청합니다. 한 주간 동안도 주님의 은총 가운데 당당하게 사십시오. 평안을 빕니다.

2020년 9월 12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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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한희철의 얘기마을(82)


상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힘든 일이지 싶어 저녁 어스름, 강가로 나갔다.

모질게 할퀸 상처처럼 형편없이 망가진 널따란 강가 밭, 

기름진 검은 흙은 어디로 가고 속뼈처럼 자갈들이 드러났다.


조금 위쪽에 있는 밭엔 모래가 두껍게 덮였다.

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아물 길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들.

한참을 강가 밭에 섰다가 주르르 두 눈이 젖고 만다.


무심하고 막막한 세월.

웬 인기척에 뒤돌아서니 저만치 동네 노인 한분이 뒷짐을 진 채 망가진 밭을 서성인다.

슬그머니 자릴 피한다.

눈물도 만남도 죄스러워서.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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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신동숙의 글밭(232)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언젠가부터 스쳐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잠이 깨려는 순간

눈도 채 뜨지 못한

비몽사몽 간에

새벽녘이나 아침 나절에


잠들 무렵이면

낮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일

해결되지 못한 일

후회스러운 일

아쉬운 일

잘못한 일

그리운 일


다 기억나지 않는 꿈 속의 일이지만

밤새 내 몸은 웅크린 채

지나온 하루를 품는다


그렇게 내 안의 나는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꿈 속에서 게워내고 게워내고


해가 뜰 무렵이면

가장 커다란 한 알로 오롯히 영글어

잠시 스치듯 감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

얼굴이기도 하고

장면이기도 하고

빈 가슴에 태양처럼 떠 안겨 주고는

돌아온 새날을 또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용서 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함께 해 주세요


나는 매일 아침

눈도 뜨지 못한 채

간절한 짧은 기도로 하루를 열고


눈을 뜨고 본 세상은 

온통 밝고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온통 감사한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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