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림으로 만드는 평화

머뭇거림으로 만드는 평화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고후13:11)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 주간 동안도 평안하게 지내셨는지요? 맑고 청명한 대기가 우리 마음속 우울함을 조금은 덜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는 아주 오랫동안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입니다. 잊고 계신 것은 아니지요? 그리스도인 됨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만 국한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상기시키는 이들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거룩의 세계를 가리켜 보여야 한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욕에 길든 우리는 자신이 순례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욕망의 거리를 바장입니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려면 신앙의 길을 걷는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다는 사실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나날입니다.

가을입니다.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조금씩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면 영문을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찾아옵니다. 열흘 붉은 꽃도 없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실감 나는 나날입니다. 강둑에 앉아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있노라면 아늑한 고요함이 물결처럼 번져옵니다. 문득 어린 시절에 부르곤 했던 동요들이 떠올라 가만히 불러봅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평화롭지만 쓸쓸한 정경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즐겨 부르던 동요는 대체로 쓸쓸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섬 집 아기’, ‘겨울나무’, ‘엄마야 누나야’ 등이 다 그렇습니다. 아기를 혼자 놔두고 섬 그늘로 굴을 따라가야 하는 엄마의 마음,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에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부는 나무도 그렇지요.

동요는 아니지만, 이은상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현제명 선생님이 곡을 만드신 ‘그 집 앞’이라는 곡도 떠오릅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이 머뭇거림, 망설임을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답답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습니다.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의지적인 행동이 아니라 비의지적인 행동입니다. 그 속에 애틋함이 있습니다. 서슴없이, 당당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대세처럼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이런 은근함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나이 듦의 징조일까요? 어쩌면 너무나 난폭하게 흘러가는 세상에 지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몬느 베이유는 우리가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대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머뭇거림’(hesitation)이 그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고, 응대하는 이들은 시원시원해 보일지는 몰라도 삶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마련입니다. ‘달의 이면’이라는 말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파악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고, 그건 사람 살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살자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을 아주 몹쓸 사람으로 몰아붙이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 가을에 이런저런 동요가 떠오른 것은 우리의 거친 세태에 대한 피곤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가을이면 각 교단 총회로 시끄럽습니다. 영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총회 때문에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총회는 각 교파의 지향과 정책을 결정하고 교단을 이끌어갈 리더를 뽑는 것을 주된 소임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지향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이 시대의 문제들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심도 있게 논의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총회는 그 기본적인 직무를 내팽개친 채 정치꾼들의 무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음성을 높이는 이들은 다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영 논리에 가담하는 순간 참을 향한 순례는 중단되고 맙니다. 교권을 쥔 이들의 단일한 목소리가 다양한 소리를 압도할 때 진리는 잦아들게 마련입니다. 동일한 소리를 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하려하고, 그들에게 불온의 딱지를 붙여 침묵시키려 할 때 교회는 퇴행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교리나 예배 방법의 차이가 우리들의 일치를 가로막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꼭 갈라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묻습니다. 

“비록 우리가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서로 사랑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비록 한 가지 의견으로 통일되지는 못한다 해도 한 마음이 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작은 차이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연합되어 있습니다. 서로간의 차이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선행과 사랑에 있어서 서로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웨슬리 설교전집3>, 설교 ‘관용의 정신’중에서, 기독교서회, p.61)

누군가를 동화시키려는 것, 자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차이는 잠시 놓아두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선행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과잉 대표하는 정치 문제로 인해 교회는 분열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부정하는 거친 말이 오고 가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찢기고 있습니다. 각급 교단의 총회가 그런 대결을 해소하는 화해의 자리가 아니라 더 큰 분열의 자리가 되고 있으니 딱할 따름입니다. 감리교회도 10월 중순에 감독을 뽑는 선거를 하게 됩니다. 감리교회는 그간 감독회장 직무를 두고 오랫동안 다퉈왔습니다. 혼란이 감리교회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감리교회가 새로워져야 할 때입니다.

이제 추석이 다가옵니다. 감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맞이하는 명절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입니다. 가급적이면 많은 이들이 접촉하는 자리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는 정일근 시인의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기억하시는지요? 명절이 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두레 밥상 앞에 앉습니다. 시인은 우리가 한 끼 밥 차지하기 위해 혹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해 날카로운 발톱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은 모두가 귀히 여기는 사랑을 회복하라는 일종의 부름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회복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식탁은 성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올 추석에는 이런 밥상 앞에 둘러앉지는 못한다 해도, 서로를 귀히 여기는 마음만은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잠시 물러나 우리 생명의 본질을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은 ‘서로 기대어 있음’입니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곁에 있는 이들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이맘때면 저는 김종삼 시인의 시 ‘묵화墨畫’를 떠올리곤 합니다. 묵화는 물론 먹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화려하진 않기에 오히려 우리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그림입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정경이 눈에 잡힐 듯 선합니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소가 물을 마십니다. 쟁기질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소도 힘겨웠을 것입니다. 할머니는 마치 자식을 돌보듯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소도 고스란히 느꼈겠지요? ‘고맙다’, ‘애썼다’, ‘너라도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니?’ 부은 발잔등이 안쓰럽습니다. 적막하지만 애상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시는 ‘마침표’로 끝나지 않고 ‘쉼표’로 끝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족끼리도 이런 마음을 품고 서로를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뿐인가요? 우리가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이들 하나하나를 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더러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는 범위 안에서 공원 산책이라도 하십시오. 텔레비전만 보시지 말고 문득 창문을 열어 밤하늘도 바라보십시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이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별 하나하나를 헤아리며 그리운 이름들을 떠올렸던 윤동주의 마음도 한번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중에 수술을 받은 교우가 계십니다. 잘 회복 중이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세 드신 교우들도 건강에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시니 고맙습니다. 점점 원만한 빛으로 무르익어가는 벼들이 우리 마음의 날카로운 것들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면 좋겠습니다. 은총 안에서 걷는 길에 생명의 향기, 평화의 훈풍이 불어오기를 기대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2020년 9월 26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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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따뜻하게

한희철의 얘기마을(99)


아픈 만큼 따뜻하게


끝내 집사님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애써 웃음으로 견디던 감정의 둑이 한 순간 터져 엉엉 울었다. 


고만고만한 보따리 몇 개 좁다란 마루에 쌓아놓고 무릎 맞대고 둘러앉아 드린 이사 예배.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고 집사님 손 아무 말 없이 잡았을 때, 집사님은 잡은 손을 움켜쥐곤 바닥에 쓰러져 둑 무너진 듯 울었다. 그렇게 울고 떠나면 안 좋다고, 옆의 교우들 한참을 달랬지만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쓰리고 아린 세월. 잠시라도 약해지면 무너지고 만다는 걸 잘 알기에 덤덤히, 때로는 우악스럽게 지켜온 지난날의 설움과 아픔이 막상 떠나는 시간이 되어선 와락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 데리고 하루하루 고된 품을 팔아 끊어질 듯 이어 온 위태했던 삶, 질곡의 땅 질곡의 시간, 단강을 떠나는 것이다. 아무도 그 눈물 쉬 말릴 수 없었다. 신집사님은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단강을 떠났다.




다음날 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 마음이 참으로 착잡했다. 가뜩이나 적은 교인인데 연초 안집사님에 이어 신집사님도 이사를 떠난 것이다. 유집사님은 기도를 하며 남은 빈자리를 잘 지키게 해달라고, 한 명이 떠났지만 열 명으로 채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잘 견디자고, 이게 농촌교회가 져야 할 십자가라면 그냥 지자고, 어쩜 우린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그렇더라도 낙망해선 안 된다고, 집사님의 이사 소식을 알리며 그런 얘길 덧붙였다. 내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예배를 드리며 자꾸 눈은 집사님 늘 앉던 그 자리에 함정 빠지듯 고꾸라지곤 했다. 봄철 따뜻한 볕에 흙벽 후둑후둑 녹아내리듯 마음 한 구석이 그렇게 무너지며 어렵게 한 주일은 갔다. 우린 점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다.


새로 맞은 주일, 사순절 절기의 첫 주였던 그 날의 설교 제목은 ‘많은 중에 우린 조금만 남았지만’이었다. 많은 중에 우린 조금만 남았지만 갈 길과 할 일을 가르쳐 달라 했던 이스라엘의 다급함과 그 다급함 속에 숨겨져 있는 거짓됨을 아울러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생각지 못했던 두 분이 새로 교회에 나왔다. 끝정자에 살고 있는 김기봉, 최동해 부부. 두 분 역시 어려운 이웃이지만 그건 분명 하나님의 배려였다. 인도한 안갑순 속장님을 따라 나란히 옆에 앉으신 두 분.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그 자리는 떠난 신집사님이 늘 앉던 그 자리 아닌가.

박수로 환영하는 우리들 마음이 기뻤고, 한편으론 아팠고, 그런 만큼 우리는 더욱 힘차고 따뜻하게 두 사람을 맞았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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