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제단

한희철의 얘기마을(118)


새벽 제단


매일 새벽마다 어김이 없는 두 분이 있습니다. 문 권사님과 지 권사님입니다. 문 권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제단을 닦고, 지 권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종을 칩니다. 그 일은 어김이 없어 멀리 자식 집에 다니러 갔다가도 아무리 늦어도 굳이 돌아오는 것은 그 일 때문입니다.


늙은 과부에 가난하기까지 하니 무엇으로 봉사하겠느냐고 안타까워 할 때, 두 분께 주어진 일이 제단 닦는 일과 새벽종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두 분은 그 일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인양 지성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두 분은 모두 일흔이 넘은 노인들입니다. 그런데다가 두 분은 모두 몸이 불편합니다. 제단을 닦는 문권사님은 관절염이 심하여 걷는 일도 힘들고 무릎을 꿇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제단 닦는 일은 늘 그분의 손길이고, 제단을 닦는 순간엔 불편한 몸도 다 잊어버리곤 합니다. 




종을 치는 지 권사님은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꼈는데, 보청기를 끼고서도 제대로 듣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목사님 설교와 남이 당신 흉보는 소리는 들을 수가 있어 다행입니다. 보청기를 끼고서도 귀가 어둡지만 지권사님이 울리는 새벽종은 일분 이른 적이 없고 일분 늦은 적이 없습니다. 


틀림이 없는 시간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건 지권사님 집에 자명종 시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조그만 시계뿐입니다. 손목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권사님은 매일같이 새벽잠을 설칠지도 모릅니다. 자다 말고 깨어 시계를 확인하고 또 자고, 그러다간 또 깨고, 바쁜 농사철, 이집 저집 일 거들면 납덩이처럼 몸 무거울 텐데도 새벽종은 정해진 시간에 어김이 없이 울립니다.


그렇게 제단 닦는 일과 종 치는 일은 두 분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제단을 닦는 문 권사님이 늦은 적이 있는데, 종치고 들어온 지 권사님이 대신 제단을 닦았습니다. 그때 예배당 뒤편에서 불벼락이 떨어졌는데, 늦게 온 문 권사님이 지 권사님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내가 종 치면 좋아요?” 호령을 한 것입니다. 맘 좋기로 유명한 문 권사님이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누구도 전에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지 권사님이 큰아들 네가 있는 서울로 이사를 갔습니다. 정든 마을도 마을이지만 예배당 종 치는 일 때문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눈물로 돌렸습니다. 지 권사님은 떠나기 전 당신 후임으로 종을 치게 된 원 권사님께 한 가지를 선물했는데, 당신 손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였습니다. 지 권사님은 멀리 서울로 떠났지만 매일 새벽마다 꿈 속에서도 생시처럼 고향교회 새벽종을 치고 계실 겁니다.


만종교회 최 목사한테 지 권사님, 문 권사님 이야기를 들을 때, 작은 시골교회를 지키는 두 분의 모습이 아름답고도 거룩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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