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네 소

한희철의 얘기마을(126)


은희네 소


은희네 소가 은희네로 온 지는 10년이 넘었습니다. 정확히 그 연수를 아는 이는 없지만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연수가 십년을 넘습니다. 이젠 등도 굽고 걸음걸이도 느려져 늙은 티가 한눈에 납니다.

은희네 소는 은희네 큰 재산입니다. 시골에서 소야 누구 네라도 큰 재산이지만 은희네는 더욱 그러합니다. 


팔십 연줄에 들어선 허리가 굽을 대로 굽어 고꾸라질 듯 허리가 땅에 닿을 할머니, 은희네 할머니가 온 집안 살림을 꾸려갑니다. 아직 젊은 나이의 아들과 며느리가 있지만 그들조차도 이런 일 저런 일 크고 작은 일에까지 할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중3인 은희야 제 할 일  제가 한다 해도 이제 초등학교 3학년과 2학년인 은옥이와 은진이 뒷바라지는 역시 할머니 몫입니다.



이런 저런 농사일 꾸려 나가려면 적지 않은 품이 들고, 품의 대부분은 다시 품으로 갚아야 하는데 품 갚을 손이 집안에 없습니다. 그럴 때면 소가 나섭니다. 사람 대신 소를 보내도 소로 사람 품 수를 쳐주는 까닭입니다.


그런 주인 집 사정 저도 안다는 듯 은희네 소는 십년이 넘도록 묵묵히 온갖 일을 해왔습니다. 게다가 때마다 송아지를 쑥쑥 잘 낳아주니 그런 든든한 재산이 어디 쉽겠습니까.


어디 하나 의지할 데 없이 막막한 삶을 살아가는 은희 할머니, 어쩜 은희 할머니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것은 소, 말 못하는 소인지도 모릅니다. 당신보다 소 먼저 죽는다면 죽은 소 정성스레 묻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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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성당

신동숙의 글밭(258)


구멍가게 성당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답

작은 마을의 어둑해진 골목길은 좁은길


구멍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어린 아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카운터를 지키시던 주인 아주머니가 

오늘은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텔레비젼을 바라보시며 

저녁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색색깔의 과자봉지와 음료들은 아울러

중세시대 성당의 화려한 비잔틴 모자이크가 됩니다.


간혹 종지에 촛불을 켜고 앉으셔서 늦은 밤까지

학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의 밤길을 지켜주기도 하시는


염주알인지 묵주알을 돌리시기도 하는 구멍가게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풍성한 이곳은 기도의 성당


두 손을 모으신 아주머니가

홀로 드리는 저녁 미사를 두고

간혹 싫어하는 손님도 계신다지만, 


앞으로 과자를 사러갈 때면

기도의 성당으로 들어가듯 

달콤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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