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도 머물지 말라"

신동숙의 글밭(265)


"평화에도 머물지 말라"


모처럼 제 방 안에 앉아 있으려니,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이 오고 밤이 옵니다. 지난 시월 한 달 동안의 주말 저녁은 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홀로 저녁 하늘과 밤하늘을 바라보며, 어둠 속으로 잠기곤 하였습니다. 


가야산 해인사 원당암 마당 위로 유난히 하얗게 빛나며 금실거리던 시월의 별들을 바라보다가, 또한 저 별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한 마음이 문득 별처럼 떠올라, 가슴이 그대로 고요한 가을밤이 되고 어둠이 되던 순간도 이제는 꿈결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초여름부터 어김없이 들려오던 창밖의 풀벌레 소리가 오늘은 멈추었습니다. 이렇게 고요히 앉아서 귀를 기울이기 전까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풀벌레들의 침묵입니다. 태화강변을 따라서 아직은 화려한 가을잎들 중에서도 먼저 땅으로 돌아간 잎들을 덮고서 긴 잠에 들었을 풀벌레들에게는 올해도 겨울이 먼저 찾아오겠지요.


지난 주일 새벽 아침 작은 성당에서 드리던 성무일도를 제 방에 앉아서 <시편>과 <시편 사색> 필사로 대신하기로 하였습니다. 간간히 빼먹는 날도 있지만, 그와 같은 아쉬움과 모자람은 늘 그림자처럼 달고 살아가는 인생이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필사로 드리는 성무일도에 이어서 혜국 스님의 <신심명(信心銘)>을 마음으로 손으로 새겨 읽다가 한 구절에서 그만 마음이 멈추었습니다. "있는 인연도 따르지 말고 공함에도 머물지 말라."


幕逐有緣 勿住空忍  막축유연 물주공인

一種平懷 泯然自盡  일종평회 민연자진


있는 인연도 따르지 말고

공함에도 머물지 말라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저절로 사라져 다하리라


(<신심명(信心銘)>, 62쪽, 慧國스님, 모과나무)


스님의 풀이로 보자면, '있는 인연'이란 '세간법'이 되고, '공함'이란 취함도 버림도 없는 공(空) 즉 '열반'이 됩니다. '세간법에도 머물지 말고 열반에도 머물지 말라'는 한 말씀에서 흐르던 생각이 우뚝 멈추어 선 것입니다. 


'일종(一種)'이란 '한 가지', '하나'입니다. 경허 선사의 '만법귀일(萬法歸一)'에서처럼,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선사들의 깨달음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그 '하나'를 가리킵니다. <신심명>에서 말하는 '하나'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멸한 자리.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자리, 좋고 싫음과 취함과 버림, 세간법과 열반의 양변을 초월한 자리' 즉 석가모니의 바른 법인 중도(中道)'를 말합니다.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마음 심(心)'이 된다던 선각자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한 곳은 지극히 가까워 보이지 않는 내 마음, 불성, 참자아입니다. 있는 듯 없는 그 마음의 원점, 중심점을 두고 '한 가지', '하나'라 이름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도, 석가모니와 예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같은 '하나', '진리'라는 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과 경전 중에서도 <성경>과 <불경>이라는 거울을 참고서 삼아, 제 마음 거울을 교과서 삼아서 비추어 보고 또 비추어 보아도 티끌 만큼의 차이도 없는 그 '하나'는 곧 '진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청정한 가을 하늘을 닮은 고요한 마음이 우리의 본래 면목, 본성, 성품이 되지만 그 고요함의 열반경에 조차도 머물지 말라는 <신심명>에서 우뚝 생각이 멈춘 것입니다. 마치 화두참선 중에 만나게 되는 사방이 가로막힌 막다른 골목길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듯 망연히 바라보다가 이어서 흐른 곳은 토마스 머튼의 '초연함'입니다.


"하느님, 저는 평화에 대한 집착을, 관상생활과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현존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과 감미로움에 대한 집착을 포기합니다. 저는 당신의 의미와 당신의 영광만을 사랑하기 위해 저 자신을 당신께 드립니다." 머튼이 말하는 집착의 반대말은 초연함입니다.


하루는 박 안셀모 신부님의 머튼 강의 중에서 '집착과 초연함'에 대한 부분을 유튜브 동영상으로 들으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 맞은편에 앉아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아들을 향해서 제 입에서 절로 절로 흘러나오는 소리는, "더 먹어, 더 먹어", 밥그릇 가까이 고개를 숙이고서 밥에 집중하던 아들의 입에서 나즈막이 툭 나온 말은, "집착하지마, 엄마"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어린 아들의 그 한 마디에 움찔 찔린 곳은 스스로 잔잔한 줄 알았던 제 마음입니다. 그 순간 아무런 대꾸도 찾을 수 없었던 침묵과 멈춤의 순간.


토마스 머튼이 말하는 초연함이란, 평화와 관상생활 등 하느님의 선물에서도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참선 수행 중 나타나는 모든 경계를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라는 선불교의 화두참선법과도 겹쳐집니다. 머튼의 "이런 자유로움 속에 있는 이들은 모든 망상들을 내려놓고 진정한 실재를 볼 수 있게 되는 초연함에 도달하게 된다." 


<신심명>에서 말하는 좋고 싫음과 세속과 열반 이 모든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움. 그 조차도 머물지 말라는 열반과 해탈의 경계, 부처의 중도법을 머튼의 깊고 진지한 관상의 기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살뜰히 반갑고, 전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생명이 바라보는 하늘의 달은 하나뿐이라는 이 땅의 실상과 다르지 않음을 새삼스레 비추어보게 됩니다.


머튼은 이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한두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고 우주의 붕괴를 막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하나로 묶는다'는 의미를 되짚어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의 결과는 흔히 깊은 평화로 나타난다. 그러나 머튼은 평화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한다.' 평화는 하느님과의 일치의 표시요 우연일 뿐, "우리가 평화나 하느님의 현존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에 하느님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참으로 현존하신다." (새 명상의 씨, 231쪽)


머튼이 말하는 초연함이란 '진리이신 하느님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석가모니의 바른 수행법인 참선과 함께 관상(觀想)의 기도에서 말하는 "진정한 관상은 모든 만족과 모든 체험을 초월해서 순수하고 꾸밈없는 믿음의 암흑 속에서 쉬는 사랑의 작업입니다." (새 명상의 씨, 231쪽)


(박 안셀모 신부님의 강의록 참조)


머튼이 표현한 '모든 만족과 모든 체험을 초월해서 순수하고 꾸밈없는 믿음의 암흑'이란 <신심명>에서 말하는 '세간법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말고', 즉 초월해서 신심의 믿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몰록의 모르는 세계, 진리를 말함이 아닌지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으로 다시 되돌아옵니다. 


혜국 선사의 표현처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이란,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듯 잠시 잠깐 내게 다가온 침묵과 멈춤 속에 숨어 있었을까요? 이렇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글로 적으며 생각의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글의 길이란 그저 그 하나, 즉 진리의 주위를 서성이며 맴도는 일일 뿐입니다. 


밤하늘 아래를 서성이며 맴돌다가 11월의 첫날 밤에 뜬 보름달을 가리키듯 제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은 하나, 참자아, 본성, 진리, 지극히 가까워 보이지 않는 내 안으로 펼쳐진 마음속 하늘, 취함도 버림도 없는 평화에도 머무는 바 없는 늘 있는 그대로의 하늘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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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잔치

한희철의 얘기마을(131)


별들의 잔치


늦은 밤, 마당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본다. 별들의 잔치, 별들은 ‘고함치며 뛰어내리는 싸락눈’ 같이 하늘 가득하다. 



맑고 밝게 빛나는 별들의 아우성. 별자리들은 저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옆자리 별들은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느라 모두들 눈빛이 총총하다. 그들 사이로 은하가 굽이쳐 흐른다. 넓고 깊은 은빛 강물, 파르스름한 물결 일으키며 하늘을 가로질러 흘러온 은하는 뒷동산 떡갈나무 숲 사이로 사라진다. 


이따금씩 하늘을 긋는 별똥별들의 눈부신 질주, 당신의 기쁨을 위해선 난 스러져도 좋아요, 열 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남은 이들의 기쁨을 바라 찬란한 몸으로 단숨에 불꽃이 되는, 망설임 없는 별똥별들의 순연한 아름다움! 


자리에 누워 별을 보다 한없이 작아지는, 그러다 어느덧 나 또한 별 하나 되어 우주 속에 점 하나로 깊게 박히는 어느 날 밤. 


-<얘기마을>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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