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학이 엄마

한희철 얘기마을(148)


승학이 엄마


교회 바로 앞에 방앗간이 있습니다. 단강이 얼마나 조용한 동네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방앗간입니다. 평소엔 몰랐던 단강의 고요함을 방아 찧다 멈춘 방앗간이 가르쳐줍니다. 방아를 멈추는 순간 동굴 속 어둠 같은 고요가 시작됩니다. 익숙해진 덕에 많이는 무감해졌지만 그래도 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 승학이 엄마를 만났더니 미안하다고 합니다. 미안한 일이 없을 텐데 뭐가 미안할까 싶어 물으니, 이틀 전인 주일날 예배시간에 방아를 찧었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피하려고 했는데 손님의 다급한 청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이야기한 지난 주일만 해도 별 불편함 없이, 아니 아무런 불편함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승학이 엄마는 방아를 찧을 때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 년 열두 달 적지 않은 방아일 텐데도 말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적어도 그 마음은 믿음에서 크게 멀지 않은 아름답고도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 때마다 우리의 예배를 염려하는 승학이 엄마의 조심스런 마음도 함께 받아 주세요.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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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그릇

신동숙의 글밭(279)


하늘 그릇




그릇에 담긴 물을 비우자마자

얼른 들어차는 하늘처럼


나를 채우려는 이 공허감과 무력감은

얼른 들어차려는 하늘의 숨인가요?


나를 비우고 덜어낸 

모자람과 패인 상처와 어둔 골짜기마다


하늘로 채우기를 원합니다.

나의 몸은 하늘 그릇입니다.


더 가지려는 한 마음이 

나의 모자람인 줄 

하늘에 비추어 알게 하시고


남을 헐뜯으려는 한 마음이 

나의 패인 상처인 줄 

하늘에 비추어 알게 하시고


높이 오르려는 한 마음이 

나의 어둔 골짜기인 줄 

하늘에 비추어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를 채우려는 이 없음이

없는 듯 계시는 하느님인 줄 스스로 알게 하소서.


나의 몸은 하늘을 담는 

하늘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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