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첫날, 오늘도 무사히

신동숙의 글밭(301)


2021년의 첫날, 오늘도 무사히




기대와 설레임으로 서서히 다가오던 새해의 첫날로 추억한다. 오늘 맞이하는 2021년 신축년(辛丑年)의 새해 첫날에선 고요함 속에 생명들의 묵직한 아픔의 소리가 들어있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서 겨울에는 멈추어야 할 생명들이 문명의 흐름을 따라서 더는 멈추지 못하고서 여기저기 생가지 꺾이듯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 그치질 않는다.


빙판길로 변해버린 제주의 도로에선 미끄러진 차량들과 사람들. 거제시에선 새벽 출근길에 가장들이 탄 오토바이가 달리던 도로 위 블랙아이스에서 줄줄이 미끄러져 내동댕이 쳐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늘어나는 배달 음식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위험천만한 도로를 달렸을 오토바이 배달업 종사자들 그들의 더운 한숨으로도 이 추운 겨울날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설레임으로 잠못들던 새해의 첫날 밤을, 오늘은 걱정과 염려로 잠못드는 밤이 된다. 입에선 저절로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장이 맴돈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에 본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하는 소녀의 두 눈이 향하던 허공은 2021년의 하늘에까지 닿아 있다.


부디 있는 곳에서 멈추어, 제발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기를, 떨어지지 않기를, 기계에 끼이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회복되기를, 안으로 뿌리를 내리는 한 그루 겨울 나무의 묵묵한 깊어짐으로 오늘도 무사하기를 빈다. 


떠오르는 동해의 태양이 비추어 닿기를 원하는 곳은 가장 어둡고 외진 우리들의 마음속이다. 우리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해가 진짜 해이기에,


새해 첫날 새아침

해가 떴습니다


어둡고 가난한

제 마음에도


해가 떴습니다

해의 이름은 사랑해`입니다


햇살은 언제나 따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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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

한희철의 얘기마을(190)


교수님께


끓여주신 결명자 차 맛은 아무래도 밋밋했습니다. 딱딱할 것 같은 권위의 모습 어디에도 없어 특별히 몸가짐을 조심할 것도 없는 편한 교수실 분위기와 예의 잔잔한 교수님 웃음이 그 밋밋한 결명자 차 맛까지를 또 하나의 편함으로 만들어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작은 난로 앞, 마치 큰 추위에 쫓겨 온 사람들처럼 난로를 바짝 끼고 앉아 나눈 이야기들, 혹 나눈 이야기는 잊는다 해도 그런 분위기는 오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듯싶습니다.


큰 배려였습니다. 농촌에서 구경꾼처럼 살아가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그저 서툰 글로 썼을 뿐인데, 농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농촌의 바른 이해를 위해 책을 읽게 하였다는 이야기야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면서도, 그것이 다름 아닌 제 책이었다는데 적지 않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큰 배려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쓴 독후감을 한 다발 전해 받으며, 내가 쓴 글에 대한 젊은이들의 뒷이야기를 이렇게 싫도록 듣게 되었구나 싶어 무엇보다 고마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삶에 대한 학생들의 따뜻한(과제물이라는 의무감을 떨쳐버린) 관심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새삼스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외로움이 흔쾌히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지적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두어도 될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그것이 자기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냐는 지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펜을 잡을 때마다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쉬 놓치곤 하는 마음의 허술함을 그는 바르게 지적한 셈입니다. 조용함이 무섭다는 걸 배웠다는, 한 학생이 글을 마치며 쓴 이야기는 쉽지 않은 무게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잘 보관해 두었다가 심지가 약해질 때면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참, 들려주신 육종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풀 한 포기에도 자기다움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니요.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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