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


김영옥 성도님네 잎담배 심는 곳에 다녀왔다.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 밭이었다. 요즘은 매일같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담배를 심고 있다. 그때마다 일터로 찾아가 인사를 한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일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건 수고한다는 빈말에 가까운 인사보다는 구체적으로 일을 돕는 일손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맡은 일의 차이를 인정하여 인사만이라도 거르지 말아야지 싶은 생각이다. 내가 할일을 사람들이 깨달으며 인정한 후엔 오히려 함께 일함이 쉬워지겠지.


밭에 가니 동네 거의 모든 분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담배는 참 손이 많이 가는 농사다. 한 분씩 만나 뵈며 수고하신다 인사를 하며 몇 마디씩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도 반가이 맞아 주는 그분들이 고맙다.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일하는 밭 바로 옆 강가 잔디밭에 진노랑 민들레가 한 무더기 피어 있다. 노란색 물감을 큰 붓으로 뭉뚝뭉뚝 찍어 놓은 듯 옹기종기 피어있었다. 막 돋아난 연초록 잔디는 바로 옆 맑게 흐르는 강물에 어울려 더 없이 깨끗한데, 그 위에 진노랑 민들레라니.


‘햐, 곱기도 하다!’


붙잡힌 듯 한참을 본다. 돌아오며 생각하니 조금 전 본 광경이 오늘날 농촌의 모습이지 싶다. 강가 잔디밭 그리도 고운 민들레가 망설임 없이 피어나는 곳,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밭둑 하나 사이로 민들레를 쳐다 볼 여유가 없다. 허리 굽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을 가듯 정처 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나라 잃은 설움을 노래했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생각나 크게 부른다. 부르다 보니 오래 전 그날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노래한 듯싶어 자꾸만 후렴을 반복한다. 아니 반복된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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