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명분

 

 

허전함과 괴로움과 두려움.
언제부터인지 그런 감정들이 서로 뒤섞여 가슴 한쪽 거친 똬리를 틀고 신기하게 날 거기 잡아넣는다. 애써 아닌 척 하지만 그걸 느낄 때마다 가슴이 눌린다.


함께 사는 이들의 속살 보듯 뻔히 뵈는 아픔, 설움, 거짓을 두고 난 그저 무력할 뿐.
그게 두려워 괴로워 모른 척 하고.
또한 바람처럼 쉽게 헐값으로 회자되기도 하는 가벼움.
정말 내 삶은 어디에 소용 닿는 것인지.
견딘다는 건 무모한 명분 아닌지.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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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기"

 



이따금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 후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어린 생각에도 엄마한테 혼이 날까봐, 어린 마음에도 자기에게 곤란하다 싶으면, 아이들은 무심코 엉뚱한 말로 둘러대거나, 금방 들통날 적절치 않은 말이 입에서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러한 미흡한 말들은 당장에 주어진 현실을 회피하고 싶다거나, 현실을 충분히 직시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둔함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일종의 거짓말인 셈이다.

그럴 때면 내 유년 시절의 추억 속 장면들이 출렁이는 그리움의 바다로부터 해처럼 떠오른다.

나의 자녀들과 지금 현재 겪고 있는 똑같은 순간이 나의 유년기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겹쳐진다.

함께 뛰어놀던 동네 언니들이랑 무슨 말을 주고 받을 때면, 큰 언니들은 웃음 띈 얼굴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놀이처럼 작은 내게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기"라는 주문을 걸었다. 그러면 나는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주문에 걸려서 어린 나 스스로는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던, 그 순간의 낯선 정적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내 앞에 있던 이들은 내 입만 바라보면서 조용히 기다려 주었고, 우리는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과 입을 가까이 마주대할 수 있었던 그 정적의 순간.

그 정적의 고요한 순간이란, 내가 처한 현실과 곧 내 입에서 나올 말이 서로 일치되기 위한 만남과 평화협정의 자리인 셈이다.

그런 고요한 순간에는 거짓말이 발붙일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진실의 말 하나를 내 속에서 나 스스로 찾았다는 사실을 의식함과 동시에 그러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뭔가 모르게 가슴으로 느껴지던 밝음과 개운함, 입에서 말이 되어 나오기 전에 이미 마음이 먼저 충만해져 오던 찰라의 순간을 기억한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의 말이 먼저 있는데, 어찌 그 외에 다른 말로 하늘을 가릴까?

자라오면서 엄마하고도 그와 같은 순간의 추억이 있다.
바쁘신 엄마는 간단하게 딱 한 마디만 하셨다.

내 얼굴과 두 눈과 입을 똑바로 바라보시면서, "바른말 해라."

그러면 그 한 말씀에 내 몸은 주문이 걸려 모든 걸 멈추고, 내가 처한 현실과 곧 내 입에서 새어나올 말이 일치되기 위해 내 안에선 나름의 애를 쓰던 그 느낌.

그 옛날 언니들이라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무척 어렸을 나이인데, 세 살부터 앓아오시던 천식으로 산고개를 넘지 못한 엄마는 한글도 다 깨치지 못했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서 양심을 깨우는 방법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 사실이 문득 궁금해졌고, 신기했다. 그로인해서 우리나라 민속학에 관심이 모아졌고, 우리 민족 최초의 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에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인의 심성 저변에 흐르는 그 선함과 밝음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겪어오면서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민중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살아서 이어져 온 한의 정서, 즉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이 우리의 DNA 속에는 유유히 흘러서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내게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크고 밝은 뜻을 담은 말인 '한'이 부처가 가리킨 '마음'과 예수가 보여준 '마음'과 윤동주 시인이 우러러본 '하늘'과 BTS의 음악 세상에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밝음'과 동의어로 여겨진다. 

진실과 진실한 말을 소중히 여기는 이에게 하늘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시리라는 믿음이 내겐 있다. 진실은 진리이신 하느님의 또 하나의 이름이기에.

내가 성철 스님의 법문을 좋아하게 된 핵심 법문이 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거짓말 하지 마라." 남에게 거짓말 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씀이다.

성경의 잠언 24장 26절에도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 적당함의 의미는 물론 진실을 내포하고 있으리라.

현실에 딱 맞는 말 한 마디에는 힘이 있다. 진실을 말함으로 인해서 당장에 손해를 볼 것 같은 순간조차도 진실을 말했을 때, 그 뒤에 뒤따르던 밝음과 홀가분함과 그전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으로 열리며 보이던 새로운 문과 주어진 소박한 생의 선물들을 추억하며 종종 혼자서 흐뭇해하는 보석 같은 순간들이 내게는 더러 있다.

생은 진실한 선택을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가장 큰 유익함은 혼자서도 좋은 마음의 평화와 자유일 것이다.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입에서 나오는대로 해대는 순간의 사소한 거짓말들이 나와 누군가의 마음밭에 또는 이 세상에 씨앗처럼 뿌려진 후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서 얽히고 섥히어 나중엔 자신의 삶을 얽어매는 오랏줄이 되리라는 상황들을 얼마든지 미리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볍게 거짓과 교우한 현실이란, 그 얼마나 힘에 겨울까?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나는 그런 그림을 애초에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 자신이 개운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술이나 중독 따위를 만들지 않았음에도 내게도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일들이 많이 있다.

실수와 넘어짐은 늘 발길에 부딪히는 돌멩이처럼 지금도 내 발아래 널려 있으며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땅의 흙처럼 돌멩이처럼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진흙처럼, 어린 시절 놀다가 문득 보면 집에까지 날 따라오며 성가시게 굴던 풀섶에 도깨비풀처럼.

가끔 방송 매체를 통해서 보이는 공직자들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며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는 분들에게, 누군가가 그들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에 앞서 선서의 말로 그들의 양심을 깨워줄 수 있다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내 유년기에 겪었던 그 고요한 정적의 순간을 그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을 때가 있다.

국가와 자신이 처한 지금의 현실과 곧 그들의 입에서 나올 말을 서로 일치 시키기 위한 고요한 순간을 선물해 주는 말, 진실한 말 한 마디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주문의 말. 하느님이 우리들 모두의 가슴에 공평하게 선물로 주신 양심의 해를 깨우는 말.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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