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철 씨의 속 얘기



수요예배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잠시 쉬는데 부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가보니 광철 씨였다. 작실 교우들과 돌아가다가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웬일이에요, 광철 씨?”
“지난번 가져다 드린 밤 잡수셨어요?”


밤이며 땅콩이며 호박이며 광철 씨는 늘 그렇게 먹을 게 생기면 전하려 애를 쓴다. 예배시간 이따금씩 제단에 놓이는 들꽃도 광철 씨 손길이다. 그게 광철 씨 믿음이요 사랑이다.


들꽃을 꺾어, 밭뙈기에 호박을 심어, 남의 집 일하곤 한줌 땅콩을 얻어 평소에 못 드리는 헌금 대신 드리는 광철 씨, 가장 가난하고 가장 깨끗한 드림이다.


광철 씨는 밀린 얘기를 했다. 불쌍하다 여길 뿐 아무도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이가 없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장례 치러주어 고마웠고, 장사날 밥이라도 제대로 드셨는지 모르겠다고, 엄마만 안 돌아가셨으면 곧 이어 다가온 아버지 환갑엔 전도사님 모시고 예배를 드리려고 했었다고, 엄마가 그러자고 몇 번이나 얘기하곤 했었다고, 올핸 호박을 제대로 못 심어 호박도 많이 못 따다 드렸다고, 일 안가면 밤이라도 많이 주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고, 지난여름 지방산상집회 때 가나안 농군학교에 갔던 일 좋았다고, 내년에도 또 하면 또 가고 싶다고.……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들어주는 이 없는 광철 씨, 얘기가 고팠던 것이다. 무지무지 고팠던 것이다. 전도사는 그래도 내 얘기 들어주지 않을까, 가던 길 되돌아 내려온 것이다.


더듬더듬, 어쩌면 토하듯 끄집어낸 얘기들. 한줌 작은 삶, 웬일인지 가슴이 떨려 안으로 졸아들고, 울컥 전신에 눈물 실개천으로 흐르며 광철 씨 얘기를 듣는다.

그래 대책 없더라도 듣자. 듣기라도 하자. 말간 슬픔, 떨리는 가슴, 눈물 외엔 받을 길 없는 바보 같이 여린 삶, 그렇게라도 지키자.


하얀 달빛 밟으며, 몇 번씩 인사하고 다시 작실로 오르는 광철 씨. 야윈 몸 불안한 걸음새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이 흐려 꽁꽁 그렇게 마음속 다짐을 한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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