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의 음악 정담(2)

미안, 슈베르트

베토벤 음악은 제게 그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베토벤 음악에 대해선 웬만한 찬사가 호들갑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6<전원> 교향곡은 예외입니다. <전원>은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과 달리 너무 단순하기 때문인지 재미가 없습니다. 때론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베토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명반을 여러 차례 찾아 들어보았지만 아직도 <전원>을 뜨겁게 만나지 못했습니다. 연주자나 교향악단에 따라 <전원>이 가끔 새롭게 들리긴 합니다. 그렇지만 <전원>은 다른 음악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게 몰입하게 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절로 아멘!’이 튀어나오듯 <전원>을 들으면서는 감탄했던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전원>과는 끝내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 <그레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학창 시절엔 슈베르트의 <미완성>을 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배웠습니다. <그레이트>는 슈베르트가 죽고 10년 만인 1838년에 슈만이 빈에서 발견하여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곡입니다. 이 교향곡의 초연은 당대 가장 뛰어난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음악 교과서들은 어쩌자고 이 곡이 초연되고 140여 년이 지나도록 <미완성>을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가르쳤던 것일까요.

<그레이트>는 슈베르트가 죽기 2년 전에 완성한 곡입니다. 그런데 초기 낭만파곡 치고는 러닝타임이 파격적입니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60분대를 훌쩍 넘겼다는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슈베르트는 교향곡 전문 작곡가가 아니거든요. 그의 장기는 피아노 음악과 가곡이었습니다. 때문에 슈베르트가 60분이 넘는 러닝타임의 교향곡을 썼다는 건 놀랍습니다. 오죽했으면 로베르트 슈만이 <그레이트>천상의 길이를 지닌 빼어난 작품이라 흥분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 교향곡도 제겐 좀처럼 재미가 없습니다. <그레이트>와 친해지려고 노력을 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 어쩝니까. 요즘도 가끔 듣긴 합니다. 슈베르트를 좋아하기에 들어주지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미안, 슈베르트!

 

지루하기로 치자면 브루크너도 못지않습니다. 그의 교향곡이 대단하다는 점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바흐, 멘델스존과 함께 가장 신앙과 음악과 삶이 일치했던 그를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제겐 없습니다. 저도 그의 교향곡의 심오한 느린 악장들은 참 좋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크너 음악은 제 입에서 살살 녹지 않습니다. 가슴을 흔들어놓거나 후벼 파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거의 일정한 템포로 유장하게 흐르는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브루크너란 사람은 갈등이나 불안이나 절망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의 음악이 위대한 것도 알겠고, 기막힌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악장만 넘어가면 제 집중도는 급격히 떨어집니다. 만약 말러란 음악가를 몰랐다면 어떻게든 브루크너에 정붙이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말러의 매력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기 때문에 그를 버리고 브루크너와 깊게 사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직까진 말입니다.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지휘자들 가운데서도 말러와 브루크너 모두를 빼어나게 연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대개는 브루크너나 말러 중 한 사람만 전문 지휘자로 인정을 받지요.

어떤 음악가를 사랑하지만 그의 어떤 곡이 귀에 안 들어오면 괴롭습니다. 반대로 별로 선호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는 작곡가인데 뿌리치기 힘들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는 곡을 만날 때도 힘듭니다. 그래서 죄짓듯 몰래 그런 음악을 들으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재미를 모르면서 클래식 마니아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넌 어떻게 <전원><그레이트>가 재미없을 수가 있어?”라고 말을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곡들이 좋지 않다니 네 수준을 알만 하구나라고 핀잔을 줘도 할 말은 없습니다. 뻔한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그 뒤의 진행이 눈에 보이고 지루한 걸 어쩌란 말입니까. 그렇다고 이런 음악들과 새롭게 만날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는 건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을 별로였다고 생각한 음악이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된 경험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한 명곡이라고 억지로 그 음악과 친해지려고 애를 쓰느니 그 시간에 좋아하는 음악을 한 번 더 듣기를 권합니다. 남을 위해 음악을 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것까지야 없겠지요. 그렇더라도 음악 감상조차 자선사업처럼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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