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의 구약지혜서 산책(9)
거기 영원히 서있는 땅의 사람이여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삶은 시작과 끝이라는 양극성을 품고 있다. 전도서 저자 코헬렛(전도자)은 일찍이 자연세계의 순환하는 질서와 반복되는 인간 역사에서(전도서 1:4-11) 양극의 운동을 살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양극 사이를 끝없이 오가지만 언젠가 그 끝이 존재함을 인식했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아닌가. 코헬렛은 우주와 인류 역사의 종말을(12:1-8) 내다보면서도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길과 새로울 것 없는 인류 역사의 흐름을 살펴 땅에 속한 사람이 어떠해야함을 깨우치게 했다. 그 방식은 선동적인 설득으로 굴복시키고야마는 연설이나 주입식 설교조의 말도 아니다. 간결해서 아름다운 시의 언어다.
코헬렛은 ‘해 아래’ 일어난 온갖 수고로운 일들을 조목조목 말하기 전에 자기 눈에 비친 자연현상을 시로 읊었다.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여전히 그대로 서있다.
해가 떠나고
해가 오지만
해는 떠났던 그곳으로 숨 가쁘게 가서
해는 거기서 떠오른다.
바람은 남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돌아간다.
바람은 돌고 돌아가지만
바람은 돌았던 그곳으로 되돌아온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고
강물이 나왔던 곳으로 돌아가
거기서 돌아 흘러간다.
(전도서1:4-7, 필자의 번역)
한 세대가 가고 오는 것처럼, 해도 떠나가고 온다. 바람도 강물도 가고 온다. 코헬렛은 자연의 운동을 묘사하며 마치 푸른 지구 밖에서 자연계의 운동을 내려다본 사람처럼 간명하게 말한다. 그가 사람의 죽음을 ‘가는’ 것으로(3:20; 6:6, 9; 7:2;9:10; 12:5), 출생을 ‘오는’ 것으로(6:4) 말하듯, 자연의 세계도 가고 온다. 자연과 인간이 구별 없이 가고 오는 운동을 반복한다. 한 사람이 가면 다른 사람이 오듯,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온다.
그러나 가고 오는 인간 역사는 오묘한 역설을 품었다.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오지만, 고유한 한 사람 한 사람은 한 번 가면 그뿐이다. 그런데 ‘땅은 언제나 그대로 서 있다’(1:4). 땅의 영원성과 인간의 일시성이 교차한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과 영원히 서있는 땅이 조우하면서 일시적인 사람의 한계성이 도드라진다.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남긴 말을 떠올려 본다.
“세계가 시작하였을 때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고 세계가 끝날 때에도 인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와 인간을 보는 인류학자의 눈에 인류는 각자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대를 통과하는 존재일 뿐이다. 역사의 진보를 일구어가는 위대한 인류도 자연의 일부분인 셈이다. 자연은 사람 없이 존재하지만, 사람은 자연 없이 살 수 없다. 자연의 세계는 사람에게 생존을 위한 안전한 공간으로 존재한다.
코헬렛은 자연세계의 가고 오는 반복적인 운동에 마음을 두었다. 왜일까.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의 운동은 지루하게 반복하는 무의미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일 테다. 당연하게만 여겼던 자연계의 반복 운동과 놀라운 규칙성에서 벅차오르는 감격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자연계의 반복운동이 멈추는 순간을 생각해 보았는가? 만약 우주와 푸른 지구의 반복 운동이 멈춘다면, 온 세상은 혼돈 그 자체다.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흘러 바다를 돌아 다시 강으로 흐르는 단조로운 운동이(1:4-7) 멈춘다면, 인류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우주와 자연의 순환 운동은 사람에게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질서다. 그 질서가 사람에게 복이다. 하여 사람이 날마다 해를 보며 맞이하는 아침은 환희의 조건이요, 최고의 선물 아닌가.
해와 바람과 강물과 바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켜 책임을 다하니, 사람은 그 규칙적인 운동에서 창조자의 호흡과 손길을 느낀다. 사람은 피조세계에 깃든 반복 운동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통치 질서를 인식하고 맛본다. ‘땅이 그대로 있는’(1:4) 한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밤과 낮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창세기 8:22). 이것은 피조세계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는 오늘도 피조세계의 운동과 질서를 조정하시는 창조자의 손길을 느낀다. 때문에 규칙적인 자연의 운동과 질서를 인식한 ‘사람’(human)은 자신이 ‘흙’(humus)에 기반을 두었기에(창세기2:6)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앞에 ‘겸손’(humility)의 미덕을 실행할 테다. 사람이 물과 바람과 강물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온갖 기술과 능력을 뽐내며 관리한다한들, 사람은 ‘영원히 서있는 땅’(1:4)에 속한 존재 아니던가.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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