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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머잖아 우리는

by 한종호 2019. 3. 1.

하루 한 생각(60)

 

머잖아 우리는

 

 

볕 따뜻한 창가에 앉아 원로 장로님 내외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어쩌면 이야기는 연륜만큼 익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벼운 웃음 속에도 삶을 돌아보게 되는, 남은 시간을 헤아리게 되는 마음들이 담기고는 했다.
무슨 말 끝에 그랬을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머잖아 우리 모두는 천하의 바보가 될 거예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는 시골에서 목회를 하며 돌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지켜보았어요. 당시만 해도 목사가 염을 했고요. 마지막엔 정말 별 거 없더라고요. 사람이 죽으면 예외 없이 천하의 바보가 되요. 누가 왔다고 일어서지도 못하고, 울며 불러도 대답도 못하고, 칭찬한다고 웃지도 못하고, 욕한다고 화도 못 내고, 몸을 꽁꽁 묶는다고 소리도 못 지르고, 옷을 벗겨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마음에 안 든다고 수의를 거절하지도 못하고, 살아온 사연은 다 다르지만 모두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어느새 겨울의 끝자락, 창밖 어디론가 봄은 자기의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어서 떠나지 않는다고 얼굴을 붉히거나 서둘러 왔다고 언성을 높이는 일 없이 겨울과 봄은 서로의 손을 맞잡을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빛깔이나 모양이나 향기 때문이 아니다. 지기 때문이다. 핀 꽃이 금방 진다는 것을 알기에 피어 있는 그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갈수록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마음으로는 눈부신 봄꽃들이 피지 싶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듯 자꾸만 마음속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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