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의 음악 정담(6)
“악보에 머리를 처박지 말고”
악보를 외워 지휘하는 게 대세라지만, 누구도 지휘자들에게 암보(暗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휘 콩쿠르라면 모를까, 지휘자는 원칙적으로 암보에서 면제됩니다. 암보보다는 더 중요한 역할이 지휘자에게 있다는 음악계의 오래된 합의가 아직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직업적인 지휘자가 생긴 19세기 후반에 이미 암보로 포디엄에 오른 지휘자들이 있었습니다. 직업 지휘자의 원조 격인 한스 폰 뷜로가 최초로 악보를 외워 지휘한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입니다.
멘델스존이나 바그너처럼 지휘까지 했던 “작곡가의 손에서 뷜로나 니키슈 같은 직업 지휘자의 손으로 지휘봉이 넘어”간 것은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음악계에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중부 유럽의 산업 발전으로 연주회장의 규모가 커지자 오케스트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지휘자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뷜로 이전에도 지휘자는 있었습니다. 바흐나 헨델보다 53년 일찍 태어난 장 밥티스트 륄리는 태양왕 루이 14세로부터 궁정 작곡가 겸 지휘자로 임명받았습니다. 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려 템포와 박자를 맞춘 륄리를 음악사는 최초의 지휘자로 기록했습니다. 뒤를 이어 글루크,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베버, 베를리오즈, 바그너 등이 지휘를 했지만 저들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작곡이었습니다.
이전 지휘자들과 달리 뷜로는 스코어를 분석하고, “소리와 형식을 설계하고 음향을 조절하는 일”이 본업이었습니다. 그는 첫 미국 순회공연 때 139차례나 지휘했지만 단 한 번도 악보를 보지 않았습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을 맡았을 때는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40분이나 되는 곡을 암보로 지휘했습니다. 뷜로는 후배 지휘자 R. 슈트라우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보에 머리를 처박지 말고 머리에 악보를 넣어라.”
음악사에서 초인적인 암보로 명성을 떨친 지휘자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입니다. 그는 188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아이다> 공연에 첼로 주자로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지휘자 미구에즈가 병에 걸렸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대타로 기용되었지만 <아이다>를 암보로 지휘했습니다. 급작스런 데뷔 연주에, 그것도 19살의 나이에 2시간 40분이나 걸리는 <아이다>를 악보 없이 지휘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22년 뒤인 1908년의 뉴욕 데뷔 연주 때도 토스카니니의 지휘대에는 <아이다> 스코어가 없었습니다. 미국 신문들은 ‘걸어 다니는 악보 도서관’이라며 그의 기억력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코어를 통째로 외워 지휘대에 올랐던 것은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지휘대에서 스코어를 볼 수가 없어서 외워야 했다는 것이지요.
토스카니니 이후에도 암보에 능했던 지휘자는 많습니다. 카라얀은 눈을 뜨고 지휘하는 영상물이 거의 없습니다. 영상 기록이 희귀했던 전반기에는 어떻게 지휘를 했는지 분명치 않지만 후반기에는 악보를 거의 다 외워 지휘대에 올랐던 것입니다. 암보로 지휘한 오페라만 50개가 넘었다니 할 말이 없습니다. 비상한 기억력이라면 로린 마젤도 토스카니니에 못지않습니다. 하지만 암보로 지휘대에 오른 지휘자를 떠올릴 때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빼놓기 힘듭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드볼작 등의 레퍼토리는 자주 연주되기 때문에 외우는 지휘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 그것도 <환상 교향곡>이나 <레퀴엠>이 아닌 <테 데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연주할 기회가 별로 없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러닝타임 50여 분의 <테 데움>을 아바도는 암보로 지휘했습니다. 그가 1980년대 초에 <테 데움>을 도이치그라마폰에서 녹음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미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아바도는 톱클래스 지휘자였기 때문에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계속 소화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테 데움> 정도면 스코어를 보더라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을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아바도는 <테 데움>까지 외웠던 것입니다. 아바도가 어떤 지휘자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선 국제 오페라단 예술 감독이자 상임 지휘자인 카를로 팔레스키도 암보로 유명합니다. 그도 이제까지 거의 모든 오페라를 암보로 지휘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아예 암보가 아니면 지휘하지 않겠다는 지휘자까지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조너선 노트입니다. 그는 토스카니니나 로린 마젤처럼 자기에겐 비상한 기억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악보만 보고도 모든 것이 착착 이해되는 그런 천재적인 능력”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너선 노트는 왜 스코어를 외우지 않고는 지휘대에 오르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한 것일까요.
그는 지휘자와 음악, 지휘자와 음악가들 사이의 걸림돌 제거 때문에 악보를 암기합니다. 스코어가 연주자 뿐 아니라 음악과의 소통을 방해한다는 겁니다. 악보를 보지 않고 지휘했을 때 연주자들과 최고의 교감을 나눴던 경험이 그에겐 매우 소중했던 것입니다. 스코어를 보지 않고 지휘하는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이 “더 나은 음악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스스로에게 도전”하기 위해 악보를 외운다는 것입니다. “땅의 에너지, 신의 말씀,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지의 표현이 악보를 외우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입니다.
한편에선 지휘자의 암보를 경계합니다.
“악보 없이 지휘하다 보면 작곡가의 의도에서 벗어나기 쉽고 지휘를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스위스 로망스 오케스트라 지휘를 역임한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의 말입니다. 암보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지휘자들이 악보의 세부 사항을 꼼꼼히 파악하지 않고 주선율만 외운 다음 대충 박자만 맞출까 염려한 것입니다.
전문 연주자들의 세계에서 악보 때문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적절한 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악보를 반드시 외워야 하는 연주자들은 평생을 암보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인데, 그럴 필요가 없는 지휘자들은 굳이 악보를 외우겠다고 난리입니다. 어떤 지휘자는 ‘악보에 고개를 처박지 말로 머리에 악보를 넣으라’하고, 다른 지휘자는 악보 암기 때문에 ‘지휘를 구경거리로 전락시키지 말라’고 합니다. 연주자들은 꽤나 헷갈리겠습니다. 어떤 것이 옳을까요. 악보와 암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까요. 그게 아니라면 진실은 둘 사이의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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