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의 음악 정담(5)
연주자들의 공공의 적, 암보
성악이나 기악을 막론하고 모든 전문 연주자는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에 참여하거나 반주를 맡았을 때는 악보를 봅니다. 오라토리오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등의 솔리스트, 그리고 창작곡을 초연하는 독주나 독창자들도 악보 암기에서 면제됩니다. 하지만 자기 연주라면 반드시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악보 암기에 대한 거의 공포 수준의 부담감은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 때부터 연주 무대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악보가 생각이 안 나 얼굴이 벌개져서 퇴장을 하거나, 연주 도중 엉뚱한 곡을 치다가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원곡으로 되돌아오는 정도의 실수가 언제든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오죽하면 악보 암기 때문에 연주자 못해먹겠다는 이야길 입에 달고 사는 연주자들이 생겼겠습니까.
피아니스트인 김주영이 쓴 《PIANIST NOW》란 책에는 자신이 러시아에서 유학 시절 암보 때문에 생겼던 일화가 소개됩니다. 앞 순서 학생이 쇼스타코비치의 푸가를 연주하다가 악보가 생각이 나지 않아 퇴장했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위로를 한답시고 “괜찮아, 예전에 길렐스는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까먹은 얘기, 너희들도 다 알지?” “리흐테르는 어떻고? 그 사람, 베토벤의 템페스트 소나타 3악장을 빙빙 돌아서 20분 만에 끝낸 얘기는 전설이잖아?” 그러나 연주를 앞둔 김주영에게는 그 말들이 마치 ‘너도 까먹을 거야’라는 주문처럼 들리더란 얘깁니다.
실기 시험이나 연주회를 해 본 사람은 이 대목에서 쉽게 웃을 수 없습니다. 자기는 아직 그런 불행이 없었다고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악보 외우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졌느냐와 상관없이 매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자신에게도 리흐테르나 에밀 길렐스에게 생겼던 아찔한 사고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연주자들은 몸으로 느낍니다. 전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이지요.
실제로 리흐테르는 1970년대 말부터, 그러니까 60대 중반부터는 암보 연주를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악보 암기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악보를 보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게 낫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겠지요. 이렇게 보자면 악보 암기야말로 음악도들의 숙명이자 공공의 적이라고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악보를 외우는 일은 시나 산문을 외우는 것과는 비교불가입니다. 문장이 단선인 반면 악보는 복선이기 때문입니다. 복선이란 표현으로도 모자랍니다. 악보 암기는 입체적인 작업이거든요. 그만큼 악보는 외울 게 많고 복잡합니다. 그래도 성악가는 단 선율 멜로디와 가사만 외우면 끝입니다. 그러나 피아노라면? 4성부나 5성부의 음은 물론 그 음 위에 있는 악센트, 이음줄이 있고 없는 지의 여부, 점점 빠르게나 점점 느리게, 점점 크거나 점점 작게 따위의 악상기호도 빠뜨리면 안 됩니다. 수시로 바뀌는 템포도 기억해야 하고, 곡 중간에 다른 장조로 변화되는 것도 놓쳐선 안 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정확한 위치에서 페달을 밟거나 떼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때는 수시로 지휘자와 템포와 호흡을 맞추며 외운 악보를 기억해내야 합니다.
만약 3분 분량을 외운다고 할 때 작가는 총 몇 십 개의 단어로 구성된 수십 줄의 문장을 외우면 그만이겠지만 피아노의 경우는 외우는 분량이 그보다 최소한 7-8배는 더 많아집니다. 오르간의 경우는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오른손과 왼 손이 따로 노는 것이야 피아노도 하는 일이지만, 오르간은 양 발이 양 손과 전혀 다른 박자와 멜로디 라인을 외워야하고, 악보가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로 바뀌는 음색을 기억하면서 그때마다 다른 버튼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한 번 리사이틀을 하려면 최소 90분 정도는 연주를 해야 하는데 모두 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암보가 ‘웬수’처럼 보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요.
콘서트에서 암보가 관행으로 정착된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콘서트에서 악보를 외워 피아노를 친 사람은 프란츠 리스트라고 합니다. 그는 1841년 하반기부터 다음해 초까지 베를에서 열린 21회의 독주회를 개최했는데요. 당시 80여 곡을 연주했는데 리스트는 그 중 50곡을 외워서 연주했다더군요. 워낙 초절기교를 자랑하던 피아니스트였고, 얼굴도 빼어나게 잘 생겨 여성 팬들을 줄줄 달고 다니던 당대 유럽 최고의 스타가 리스트였습니다. 그런 연주자가 자신들의 눈앞에서 악보를 전혀 보지 않고 피아노를 쳐댔으니 연주회장이 얼마나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겠습니까.
한편 암보의 역사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슈만에서 시작되었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클라라는 18세 때인 1837년 베를린에서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암보로 연주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클라라는 외워서 연주하니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다"고 했으나 당시 청중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나 봅니다. 탄성 대신에 ‘여자 주제에 잘난 척하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클라라가 너무 일찍 악보 암보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몰매를 맞은 걸까요, 아니면 여자였기 때문에 암보를 하고도 비난을 당한 것일까요.
연주 역사상 리스트를 최초로 암보로 연주한 음악가로 기억하고 싶어 한 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있던 것일까요. 저들의 가부장적 편견 때문에 클라라를 인정할 수 없던 것이라면 오늘의 우리는 저들의 편견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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