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20)
천천히 가자
창립 예배를 마치고는 모두들 돌아갔다. 지방 교역자들도, 몇 몇 지인들도, 부모님도,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모두 돌아갔다.
흙벽돌로 만든 사랑방에서 혼자 맞는 밤, 얍복 나루의 야곱이 생각났다.
그래, 편안히 가자. 맨 앞장을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가자. 비를 처음 맞을 때에야 비를 피하기 위해 뛰지만, 흠뻑 젖은 뒤엔 빗속을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법,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갈라진 틈이나 옹이 구멍을 통해 보더라도 세상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했던 H.D. 소로우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라 하십시오
아니라 하십시오.
동정이나 연민으로, 안쓰러움으로 내 손을 잡질랑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딛고 일어나겠습니다.
견디다 견디다 힘 부치면 쓰러지고 말겠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원망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저 저만치서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너무 쉽게 손을 주진 마십시오, 주님.
거친 들에 씨 뿌린 자
주일 오후 아이들이 놀러왔다. 교회에 나왔던 아이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너 먼저 들어 가!”
아이들은 서로 뒤를 뺐지만, 모두들 들어왔다. 수원종로교회 청년이 보내준 들깨차를 타서 마시곤 둘러앉아 게임을 했다. 밍맹몽, 단순하면서도 틀리기 쉬운 게임이다. 점차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그냥은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노래들도 게임이 틀리자 자연스레 부른다.
게임을 마치고 ‘화전놀이’라는 동요를 가르쳐 주었다.
“달님처럼 둥그런 진달래 꽃전은 송화 가루 냄새보다 더 구수하다”
노래 중 제일 어려운 그 부분을 배우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기타 반주에 맞춰 악보도 없이 노래를 잘 불렀다.
‘개밥’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주요섭의 단편소설이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달게 들었다.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한 권씩 빌려주었다.
이곳의 아이들을 가슴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 혼자 남았을 때, 황동규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거친 들에 씨 뿌린 자는 들을 잊기 어렵나니
어찌 견딜 수 있는 곳을 가려 아직 너의 집이라 하랴’
기쁜 날을 주옵소서
“주여 속히 임하셔서 기쁜 날을 주옵소서.”
대부분 들로 일하러 나가고 몇 사람 모여 드리는 주일 낮 예배,
찬송을 부르다 괜스레 눈물이 솟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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