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4)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어느 유머 코너에 적힌 글을 읽다보니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이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질문을 대하며 대뜸 들었던 생각은 당연히 ‘물’, 혹은 ‘솔벤트’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물’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그러나 정답은 의외였다. ‘진짜 휘발유’라는 것이다. 이런,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니! 정답을 확인하는 순간 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기가 막힌 역설!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는 사실은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며 물을 가장 많이 넣으면 대번 들통이 나고 말 것이다. 자동차 같으면 시동도 걸리지 않을 테고 그러면 그것이 가짜 휘발유라는 것을 대번 알아차리지 않겠는가. 아무리 가짜를 만들지만 가짜를 가장 가짜답게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이 넣어야 하는 것이 진짜라는 말은 그런 면에서 지당한 얘기였다.
이 이야기가 갖는 뜻은 무엇일까? 뜻밖의 이야기에 기분 좋게 웃으면서도 이야기가 갖고 있는 의미가 선뜻 정리되질 않았다.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여겨지질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두 가지 의미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하나는, 우리가 아무리 가짜라고 여기는 것들 속에도 실은 진짜 더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쉽게 무시하는 사람 속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짜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함부로 타인을 부정하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 생각을 뒤집은 것이지만 아무리 진짜가 많다 할지라도 그 안에 가짜가 조금이라도 들어있다면 전체가 가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많은 양의 가짜가 아니라 적은 양의 가짜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살펴야 할 것은 많은 양의 진짜가 아니라 적은 양의 가짜이다. 아무리 내 안에 많은 양의 진짜(믿음이나 진실한 마음)가 있다 할지라도, 그 안에 가짜(거짓이나 비뚤어진 욕심)가 조금이라도 들어있다면 결국은 모든 것이 가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시하기 쉬울 만큼의 적은 양의 가짜인 것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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