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의 종횡서해(3)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
- 홍순명의 《들풀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백성 이야기》 -
새로운 세계관과 시대 정신
우리는 《파우스트》라고 하면 으레 19세기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작품을 연상한다. 이 작품을 괴테의 창작인 줄로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중세 말기 이래 수많은 작가들이 파우스트를 주제로 다양한 버전의 작품을 썼다. 그런데 그 많은 작품 중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괴테의 《파우스트》뿐이다. 괴테의 인생관과 우주관, 종교관에 의해 재구성된 그 《파우스트》만이 영속적인 생명력을 얻고 불멸의 고전이 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 오는 것이다.
《파우스트》에 다양한 버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전설과 민담에도 다양한 이본(異本)이 있다. 예를 들면 《춘향전》의 경우 현재 국문본·한문본·국한문혼용본 등 무려 70여 종에 달하는 이본이 전해지고 있고, 《심청전》은 현재 공개된 이본만 경판 4종, 안성판 1종, 완판 7종, 필사본 62종이 된다.
풀무학교 홍순명 선생의 《들풀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백성이야기》(전2권)는 심청전, 흥부전, 선녀와 나무꾼(제1권), 홍길동전, 춘향전(제2권)을 새롭게 고쳐 쓴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수많은 이본들이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결같이 봉건적인 낡은 가치관을 담고 있어 의미 있는 차별성을 보기 어려운 반면, 홍순명 선생의 작품은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관과 시대 정신에 맞춰 새롭게 집필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이본들과는 사뭇 차원이 다르다.
새롭다기보다는 실로 ‘환골탈태’라는 말이 적절할 정도이다. 재창조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다. 더욱이 홍순명 선생이 이 작품들에 불어넣은 사상은 일개 백면서생이 탁자에 앉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위대한 평민’을 모토로 40년 넘도록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얻어낸 실천적 교육 철학에서 길어 올려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감히 홍순명 선생의 우리 고전 재창조 작업이 괴테의 《파우스트》에 필적할 정도로 한국 문학사에서 현격한 차별성을 갖는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
<새 춘향전>의 방자, 기독교 사상가
<새 춘향전>에서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익히는 학문이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공리공론뿐으로 백성들에게 소용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과거를 포기한다. 그리고 전남 강진으로 가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을 받는다.
특이한 것은 <새 춘향전>에서 ‘방자’가 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촐랑대는 어릿광대가 아니라 ‘할아범’으로 불리는 관아의 노복으로 등장한다. 비록 천한 신분이나 가슴에 위대한 신앙과 사상을 품은 기독교 사상가이다. 심지어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다산 정약용도 그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말할 정도이다. 노예 신분으로 고대 로마의 위대한 스토아 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홍순명 선생의 풀무학교가 추구하는 ‘위대한 평민’이란 이런 인물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할아범’의 실명은 기독교 사상가답게 ‘일원’(一源)이다. 이름을 풀면 ‘하나의 근원’이 된다. 남원 부사 변 사또의 악정을 고발하는 괘서를 담벼락에 붙였다가 밀고자의 고발로 옥에 갇힌 그는, 장독(仗毒)으로 죽기 직전 이몽룡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도련님, …죽는 날은 내가 주님 품안에, 사랑의 나라에 새로 태어나는 날이구만이라. 죽음 끝에 새 삶이 시작된다면 마다할 이가 누가 있겠능기요. 그리고 우리 이런 고생은 주님의 고생과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지라우. 우릴 모두 사랑한 것밖에 아무 죄도 없는 귀한 그런 분의 고생의 한 귀퉁이라도 참여하게 하니 주님 고맙지라우.
이몽룡이 ‘할아범’ 일원의 무덤 앞에서 춘향의 손을 꼭 잡고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 차별이나 계급 없는 사회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 <새 춘향전>의 마지막 장면이다. 백성들이 사는 마을이야말로 모든 바람직한 일이 이루어질 출발점이고 귀착점이기 때문이다. 몽룡은 세상이 바로 되려면 자기 자신부터 앞장서서 그 새로운 길을 찾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주의자, 홍길동
<새 홍길동전>은 임진왜란 무렵을 시대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관군의 추적을 피해 산 속으로 은신한 길동 일행은 세상에서 행할 수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활을 실천한다. 귀틀집을 짓고, 제각기 가진 재주대로 숯을 굽고, 호미와 낫을 만들고, 옹기를 짓고, 벼농사를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어느 날, 길동은 임진왜란에 참가했다가 본대에서 벗어난 일본 군인 고쇼(高紹) 형제를 만난다(나중에 고쇼의 동생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뜻밖에도 두 사람은 일본에 사는 백제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침략자 도요토미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조선 땅에 흘러들어와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일본의 침략 정책을 비판한다. 일본이 군인 세상이 되면서 중국, 조선, 일본의 동아시아 3국 역시 문화와 교역이 아닌 전쟁과 침략의 관계로 변했다는 것이다. 비록 강제 동원된 것이기는 하나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임진왜란에 참가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털어놓는다.
일본인 고쇼가 평화주의적인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일본 불교의 한 갈래인 정토종(淨土宗)의 영향이 컸다. 그것은 전란과 기근, 가난과 무지 속에 힘겹게 사는 민중에게 교의나 계율 같은, 스스로를 닦는 수양이나 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처를 믿고 그 이름을 외면 구원된다는 타력(他力)의 신앙을 가르치는 불교 교파였다.
길동 일행과 고쇼 남매는 전란이 한창인 시기에 산속에서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낸다. 그러나 그들은 관군의 계속된 추적에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일본으로 함께 떠나면서 고쇼 남매와 길동 일행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참, 이렇게 만나 함께 지내고 고생한 인연이 기가 막힌 것 같소. 앞으로도 우리 인연이 대를 두고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오.”
“정말, 우리가 이 싸움판에서 형제처럼 지냈다는 게 꿈만 같아.”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감정적 앙금이 적지 않은 두 나라 국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쾌하게 보여 주는 대화가 아닌가!
신앙의 인연으로 만나는 <새 심청전>
<새 심청전>에서 심청이 태어난 곳은 마한의 남대성주(南大城州), 그러니까 지금의 전남 곡성이다. 청이의 아버지 심학규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학문을 좋아해서, 동네 아이들에게 중국의 초기 경전과 의학, 농사 같은 기초 학문을 가르쳤다. 심학규는 죽은 친구의 아들 가성을 데려다 친자식처럼 키우면서, 가성이 장성하면 데릴사위로 삼을 생각을 한다.
쇠가 산출되는 덕분에 중국과 교역할 정도로 물산이 풍부했던 그 평화스러운 골짜기에 어느 날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고구려와 싸우면서 쇠가 필요해진 백제의 군대가 심청의 마을로 몰려온 것이다.
주둔군의 횡포가 심해지자, 학규는 군관에게 항의한다. 술 취한 한 군인이 학규를 대장간의 숯불 속으로 떠밀어 버리고, 눈이 까맣게 짓물러진 그는 더 이상 앞을 못 보게 된다. 분이 삭지 않은 백제군은 청이까지 중국 상인들에게 팔아넘긴다. 하지만 심청은 인당수에 몸을 던지면서도 군인들과 상인들을 위해 기도한다.
물에 빠진 심청은 한 중국 어부의 손에 목숨을 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상꿔공(相國公)이라는 인품 좋고 학식 있는 중국의 향촌 지도자를 만나 혼인을 하게 된다. 고향에 두고 온 가성을 생각했지만, 먼 타향에서 가성의 생사 확인조차 할 수 없었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상꿔공과 혼인을 하여 행복하게 살면서도 심청은 고국의 아버지와 고향 산천을 잊을 수 없었다. 심청은 진흙으로 관음상을 빚어 동네 옹기 가마에서 구웠다. 세 손가락 크기의 좌상이었다. 관음상 뒤에 심청은 고향과 지금 살고 있는 곳,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글씨를 새겼다. 심청은 해마다 자기가 파도에 실려 온 날이 되면 관음상을 백 개씩 만들어 바다로 띄워 보냈다.
이렇게 몇 해가 흘렀을까, 심청의 고향 부근 바닷가에 사는 성덕(聖德)이라는 처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으러 중국에 간 오빠 현도(顯道)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심청이 흘려보낸 관음상을 발견한다. 성덕은 관음상을 움푹 팬 굴 속에 안치하고 오빠가 도를 깨치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빈다.
한편 가성은 백제군에 끌려가 중국의 요서(遼西) 지방 해변 초소에서 근무하다가 심청이 바다에 흘려보낸 관음상을 발견한다. 관음상 뒤에 쓰인 심청의 소식을 읽은 그는 그 길로 근무지를 이탈해 심청을 찾아 떠난다. 몇 해가 지난 후 심청의 남편 상꿔공은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동쪽 나라에서 온 젊은이가 준 인삼을 먹고 병석에서 일어난다.
그 젊은이는 바로 가성이었다. 가성은 주둔지에서 도망친 후 천이백리 길을 걸어 천신만고 끝에 심청의 마을에 도달했으나 심청은 이미 결혼하여 두 남매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가성은 여러 해 모진 고생을 하며 심청의 마을까지 오는 동안, 품에 간직한 관음상과 심청을 겹쳐서 대했다. 그러나 이제 심청에 대한 마음을 접고 오직 자비로운 관음보살 앞에 기도할 뿐이었다. 상꿔공 역시 이 모든 사정을 다 헤아려 알게 되었다.
상꿔공은 생명을 구해 준 가성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리고 친정 아버지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청을 생각하여 아들과 함께 고향 길에 오르도록 주선해 주었다. 때마침 고향 가는 배편에는 동국 마한 땅 출신의 한 스님이 타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현도였다. 한 배를 탄 심청·가성·현도 세 사람은 고향 땅에 상륙한 후 먼저 현도 집에 들렀다.
현도와 성덕 두 남매의 감격적인 해후가 있은 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네 사람의 인연이 참으로 기이했다. 성덕 처녀는 심청이 보낸 관음상을 고향 바다에서 건져 가까이 모시며 오빠의 무사 귀환을 축수했고, 가성은 중국 땅에서 그 관음상을 발견하고 심청이 살던 곳으로 달려갔다. 현도는 동생이 축수하던 그 관음상을 만든 사람(심청), 성덕과 같이 우연히 바닷가에서 관음상을 발견한 사람(가성)과 한 배를 타고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같은 신앙의 인연으로 네 사람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한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평민들의 자연에 뿌리내린 건실한 삶
<새 춘향전>, <새 홍길동전>, <새 심청전>에서 우리는 몇 가지 공통된 주제들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등장 인물들로 하여금 민주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참신한 생각을 품고 행동에 뛰어들도록 만든 결정적 요인이 종교 신앙이었다는 점이다. <새 춘향전>에서는 ‘일원’의 기독교가, <새 홍길동전.에서는 ‘고쇼’의 정토종이, 그리고 <새 심청전>에서는 ‘심청’, ‘현도’ 등의 관음 신앙이 그 역할을 했는데, 이 모든 종교들은 교리나 형식에 얽매어 구름 속 진리만을 찾는 신앙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게 해주는 산 신앙이었다.
다음으로 <새 홍길동전>과 <새 심청전>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의 선린과 우애를 강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외교 용어에 원교근공(遠交近攻)이란 말도 있지만 국가 사이에는 가까운 곳일수록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대부분 정치 지배자의 야욕에 의해 빚어진 왜곡된 감정이기 십상이다. 홍순명 선생이 재창조한 고전들은 우리가 후손들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평화주의를 배울 필요가 있으며, 이웃 나라들과의 평화로운 사귐은 정치 지배자들이 아닌 평민들의 자연에 뿌리내린 건실한 삶을 밑거름으로 해서만 가능한 일임을 전편에 걸쳐 누누이 강조한다.
보수적인 독자들 중에는 홍순명 선생의 이러한 고전 재창조 작업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의 시제(時制)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전통이란 결코 박제된 것이 아니다.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움직이며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품고 있는 이상과 그 실천은 작은 실개천이 모여 커다란 강을 이루듯이 새로운 전통을 형성한다. 21세기의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전통을 앞장서 만들어 나가고 있는 홍순명 선생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박상익/우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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