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5)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1.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1941. 9.)
《윤동주 평전》에 따르면 서울에서 만주의 용정까지는 세 번이나 기차를 갈아타야하는 먼 길이었다. 두만강까지만 해도 1,660킬로미터나 된다고 했다. 고향에 도착한 그날 밤 시인의 몸은 그야말로 백골처럼 피로했을 것이다. 시인이 생각했던 또 다른 고향이란 어디였을까? 당시 그는 진로 문제로 고뇌가 많았다고 한다. 일본유학을 가서 영문학을 전공하겠다는 포부는 가난한 그의 부형들에게 짐 지우기엔 너무 큰 부담이었다. 시인 자신이 먼저 뒤를 댈 초라한 가계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때 차라리 동경 유학을 가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어떤 곳도 고향으로 가지지 못하여 백골처럼 피로했던 식민지 가난한 학생이 남의 나라 감옥에서 요시찰인물로 때 이른 죽음을 맞아야했던 것은 그래서 더욱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시인은 백골도 모르게 그 또 다른 고향에 갔을까?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어둠 속의 풍화작용처럼, 우는 백골의 울음, 쫓기는 아름다운 혼의 긴장, 아마도 지상의 나라에 몰두하여 뿌리박힌 사람에게 그런 것을 이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시킬 수는 없다 해도 절망할 일은 아니다. 공감의 한계를. 모르는 사람에겐 아마 그 모름조차 이해시킬 수 없을 테니까. 백골도 몰래 가는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은 어디라 또 다른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장소가 아니란 말은 그것이 없다는 말도 아니다. 이, 현실에서는 있음도 아니면서 없음도 아닌 것으로 존재하게 되는, 이렇게 분명히 존재함으로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 신비로운 또 다른 고향의 실체를,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어서 고뇌하게 되는 그것을 어떻게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안 된다. 거기서는 절망도 명예일 뿐인 신적 특권인 것이다.
2.
사도 바울(Παυλος, 기원후 5년경~ 64년-68년)은 소아시아 키리키아(길리기아, 현재의 터키)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로마시민이자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의 바리새파(派)에 속하여 랍비가 될 사람으로 성장했다. 유대인들에게 용납될 수 없었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자신도 누구보다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훗날 그리스도를 만나 유대교를 버리고 복음의 사도로 탈바꿈했다. 그는 신앙의 이름으로 현실을 지탱하고 있는 유대교의 비진리성을 간파했다. 이 지상의 세속성이 아니라 자기 죽음의 진실을 통한 자기와 세계의 변혁을 유일하고 가능한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는 현실을 유지시키는 종교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을 거부하고 부정할 때 나타나는 또 다른 나라야말로 현실을 진실 되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난해한 것으로 그의 추종자들에게조차 오해되기 일쑤였다. 그는 자기를 길러준 바리새파(派)로부터 가장 적대적인 핍박을 받았다. 그를 로마 법정에 고소한 자들도 그들이었다. 바울은 로마의 카이사르 법정에서 세상을 소요케 하는 이단의 지도자로 유죄 판결을 받고 참수를 당했다. 유대인이되 ‘천하의 염병’이란 비난을 받으며 율법에 얽매인 옛 종교를 과감히 벗어버린 그는 이미 유대인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었고, 로마인이되 ‘팍스 로마나’라는 제국의 슬로건에 충성할 수도 없었던 그는 로마인으로서도 안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철학자 필로(Philon, B.C. 20?~A.D. 45?)는 사도 바울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적대적이지 않았고 우호적이었다. 그는 유대인을 대표해 로마 제국의 식민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일생을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사회에서도 존경받았고 로마 제국도 그를 명성 있는 철학자이자 사상가이자 지도자로 인정해주었다. 그는 황제의 궁정에 드나들었고 여러 극장과 경기장에서 명사로 대접을 받았으며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고 한다. 그는 매국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민족주의적인 활동을 지원한 독립운동가도 아니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현실과 잘 어울려 조화롭게 살았다.
한 사람은 로마 제국에 세금을 내고 그들의 요구에 부합하며 현실에 순종하라고 설교를 했음에도 제국을 소요케 하는 자로 참수형을 면치 못했고, 한 사람은 로마 제국의 식민주의와 압제 정책들을 비판하고 납세 거부의 지도자 역을 맡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칭찬과 영예를 얻었다. 아무리 로마에 순종하라고 했을지언정 바울의 나라가 로마 제국일 수가 없었던 이유이고, 비록 말과 글로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해한 듯 했지만 필로의 나라는 결국 로마 제국이었던 셈이다.
3.
며칠 집을 떠나 수련회를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말들을 했다. 사람들을 생각하고 말들을 생각한다. 생각들은 마치 멀리 떠나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처럼 피로하고 고달프다. 귀환하지 못한 말들을 저의 떠도는 운명으로 맡겨버리고 백골처럼 피곤한 몸을 누인다.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거친 맘 어루 만지사 위로와 평화 주소서’ 숨을 고르며 기도드린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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