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26)
개치네쒜
우리가 모르는 우리말이 어디 한둘일까만, ‘개치네쒜’라는 말은 전혀 모르던 말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디 다른 나라 말로 여겨진 말이었다. 우리말에 그런 말이 있는 줄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 영 아쉽게 여겨졌던 것은 그럴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목회를 시작하며 독일어를 배우는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개설한 독일어를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나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아베 체 데’부터 배우는 과정이었다. 오직 독일어만으로 독일어를 가르쳤는데 전혀 모르는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내게는 또 다른 관심사이기도 했다. 표정이나 몸짓이 만국공통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덤으로 배웠다.
어느 날인가 인사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날 배운 인사말 중의 하나가 “게준트하이트!(Gesundheit!)”였다. 누군가가 재채기를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건네는 인사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말은 건강이라는 뜻의 ‘게준트(Gesund)’와 상태를 의미하는 ‘하이트(Heit)’가 결합된 말이었다.
게준트하이트를 일러준 선생님은 수강생인 우리들에게 자기나라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인사를 하는지를 나눠보자고 했다. 미국에서 온 학생이 당연하다는 듯이 “God bless you”라고 소개를 했다. 그날 들은 인사를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라마다 다양한 인사말이 있었다.
아랍에서는 “알함둘릴라(Alhandulilla)”(신께 찬미를)이라 말하고, 러시아에서는 재채기를 한 아이에게 “부지 즈도로브(Bud’ zdorov)”(건강해라)라고 화답한 뒤에, “로스티 볼쇼이(Rosti bolshoi)”(크게 자라거라)라고, 중국에서는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 “백 살까지 살기를”이라는 뜻으로 “바이 슈이(Bai sui)”라고, 이탈리아에서는 “펠리시타(Felicita)”(행복해라), 프랑스에서는 “A vos souhaits”(소원 성취하기를) 또는 “Que Dieu vous benisse”(신의 가호가 있기를)라고 인사를 한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는데 도무지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재채기를 했을 때 따로 들었던 말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는 그런 말이 없다고 하기에는 뭔가 우리나라를 미개하거나 무례한 나라로 만드는 것 같았고, 우리에겐 그런 말이 없다고 독일어로 표현할 자신도 없었다.
얼떨결에 대답했던 말이 “에헴!”이었다. 대답을 하고나자 그 말이 재밌다며 학생들이 웃었는데, 순간적으로 깨달았던 것은 “에헴”이라는 말은 재채기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그 말은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했던 말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아이가 기침을 하면 기침을 그치라며 어른들이 따라하라고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말에도 재채기를 했을 때 건네는 말이 있었다니! ‘개치네쒜’가 바로 그런 말이었던 것이다. ‘개치네쒜’라는 말은 영 낯설어서 마치 주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개치네쒜’의 유의어로는 ‘에이쒜’나 ‘에이추’가 있고, 강원도 방언으로는 ‘개치네시’라 했다니, 제법 널리 사용하던 말이었지 싶다. 누군가 재채기를 했을 때 “개치네쒜!” 하면 고뿔이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모르는 단어 하나를 아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재채기 하나에도 따뜻한 관심을 갖는 의미로 마음에 새겨둘 우리말이다 싶다. ‘개치네쒜’라는 낯선 말이 어서 낯설음을 벗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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