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7)
하갈-모든 박해를 탄원으로 이겨내다(2)
1. 어머니 하갈. 그 길은 험하고 멀었다. 하갈 이야기는 하갈이 어떻게 진정한 어머니가 되었으며, 어머니 역할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보여준다. 성경기자는 하갈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창세기 16:1). 이렇게 시작하는 하갈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보라.
2. 아브람과 사래가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 10년은 사래에게는 어머니가 되기를 기다리는 기간이었다. 당시 아브람은 85세 사래는 75세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 나이 계산과는 달랐겠지만, 어쨌든 아이를 출산할 만한 나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 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전무 하다는 사실을 깨닫고(“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사래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하갈을 통해서 아브람의 아이를 낳으려 한 것이다. 사래가 하는 말을 듣고 아브람은 하갈을 아내로 맞이한다. 사래는 물론이고 아브람도 하갈이 애굽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람 나이는 86세였고 사래는 76세였다. 그러면 하갈은 도대체 나이가 몇이었을까? 아브람과 사래에 비해 하갈 나이가 상당히 젊었을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명민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사래를 신실하게 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랬으니까 사래가 그런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4. 그런데 문제는 사래나 아브람이나 성경기자는 하갈을 진정한 어머니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갈을 씨받이는 아니더라도 대리모 정도로 여겼던 모양이다. 사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창세기 16:2). 이 구절을 직역하면, “내가 그로 말미암아 세워질 것이다”이다. 히브리어로 아들(벤)과 세우다(바나)는 형태와 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일종의 언어 유희를 한 셈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어가 일인칭, 즉 사래라는 것이다. 사래 자신을 위해서, 또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하갈을 대리모로 선택했고, 자신을 진정한 어머니로 설정했음을 의미한다.
5. 그러나 하갈은 생각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갈은 자신이 아브람의 부인이 되었다는 것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하갈은 자신을 대리모가 아닌 진정한 어머니로 생각했고, 그러면서 사래와 부딪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갈이 임신한 이후로 사래를 깔보았다는데,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 하갈이 제 분수를 모르고 사래를 막 대했다기보다, 대리모가 아닌 진정한 어머니 역할을 하려 한 것으로 인해 사래와 갈등을 빚었다고 보는 게 낫겠다.
6. 하갈이 어머니라는 자의식을 가지면서 사래와 갈등을 빚자,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한다. 사래는 하갈을 내 치려는 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갈을 괴롭게 함으로써 자신이 여전히 주인이고 하갈은 여종에 불과하며, 특히 하갈이 임신했다고 해도 그는 진정한 어머니가 아닌 대리모일 뿐이고, 진정한 어머니는 사래 자신임을 하갈에게 인식시키려 했을 것이다. 아브람과 사래가 나누는 대화에서 하갈은 계속 사래의 여종이지 결코 아브람의 아내가 아니고, 아브람도 하갈을 자신의 아내로 부르지 않고 사래의 여종이라고 한다.
7. 얼마나 학대가 심했던지 하갈이 견디다 못해 아무 대책 없이 가출을 한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우물곁에 있던 하갈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귀가해서 사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 것을 권고하면서,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세기 16:10)고 약속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갈을 많은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인데,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하기 이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창세기 17:20)고 말씀하시고, 이 약속은 그대로 이뤄진다(창세기 25:12-18). 그러니 하갈은 사라보다 더 사라, 즉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약속을 먼저 받은 것이다.
8. 하나님은 하갈이 임신한 것을 아시고 태어날 아이 이름도 직접 지어주신다. 하나님은 하갈이 진정한 어머니임을 인정하신 것이다. 하갈은 하나님이 권고하신 대로 귀가해서 사라를 주인으로 섬기고 대리모인 것처럼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사라가 임신을 하고 이삭을 출산하면서 하갈은 사라와 아브라함으로부터 대리모가 아닌 진정한 어머니로 인정을 받지만, 사라와 이삭에게 거추장스럽고 해로운 존재들로 여겨져서 결국 내침을 당한다.
9. 사라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치는데, 두 모자가 나가서 살기에 충분할 살림을 내준 것이 아니고, 겨우 며칠 버틸 양식과 물만 들려서 내보내는 매정함을 보인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하갈 모자는 유기견 취급을 당한 것이다. 결국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던 하갈과 이스마엘은 양식과 물이 떨어져 죽을 지경에 처한다. 모자는 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서로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한다. 하갈은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하갈이 이스마엘을 관목 덤불 아래에 둔 것은 이스마엘이 기진해서 쓰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10. 이때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오셔서 격려하신다.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세기 21:19). 하나님은 전번에 하갈을 찾아오셨을 때는 “사래의 여종 하갈”이라고 부르시는데, 이번에는 그냥 “하갈”이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회생케 하시는데, 하갈로 하여금 아이에게 먼저 물을 마시게 한다. 그 이후 일을 성경기자는 상당히 간략하게 기록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갈을 “그의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하갈은 애굽 여인이었고 사라의 여종이었다. 그런데 하갈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그를 이스마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하갈은 진정한 어머니가 되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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