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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롯의 두 딸, 모성 본능으로 살다(1)

by 한종호 2015. 2. 2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8)

롯의 두 딸, 모성 본능으로 살다(1)

 

1. 롯의 두 딸.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혹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아닌가? 하마터면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낳지 못한 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뻔한 여인들. 예기치 못한 비극적 상황에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모성 본능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그것만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죽기 직전에 수많은 솔방울을 맺는 소나무처럼, 그들은 그렇게 강력한 모성 본능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버텨냈다.

2. 아무도 일이 그렇게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룻은 데라가 이끄는 가나안 이주 희망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창세기 11:31).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들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 알 수 없지만, 중심인물들은 네 명, 즉, 데라, 아브람, 사래, 그리고 롯이었다. 성경기자가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를 언급하면서 데라의 아내, 그리고 롯의 아내를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무렵, 데라는 아내와 사별했을 것으로 보이고, 롯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그들이 무슨 이유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경기자는 그들이 원래 가려던 곳이 하란이 아닌 가나안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데라는 하란에 머물고 거기서 세상을 떠났을까? 아마도 그는 하란에서 아내 될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새롭게 가정을 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데라는 분명 가나안까지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아브람은 부친을 하란에 두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때는 하나님이 그에게 떠날 것을 명령하셨고 그 명령에 따라서 떠난다. 그때 롯도 삼촌 아브람을 따라서 하란을 떠난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세기 12:4-5). 이 구절은 롯이 자발적으로 아브람과 함께 가나안으로 갔으며,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에 그도 동참하려 했었음을 보여준다. 베드로전서 기자가 인정하듯(베드로전서 2:6-8), 롯은 생각보다 신앙적이다.

 

 

5. 롯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로도 계속 아브람과 동행한다. 아브람이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성경본문에는 롯이 그와 함께 애굽에 내려갔다는 말이 없지만, 성경기자는 아브람이 애굽을 떠나서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올 때 롯도 함께 했다고 밝힌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창세기 13:1). 그러니 아브람과 사래가 굶주림을 모면하기 위해 양식을 찾아서 애굽으로 내려갈 때, 롯도 그들과 함께 내려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온 이후, 이렇게 항상 함께 했다.

6. 그런데 가나안으로 다시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브람이 롯에게 심각하게 말하는데, 그때 사정을 성경 기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창세기 13:6). 성경 기자는 그 다음 구절들에서도 아브람과 롯이 더 이상 같은 장소에서 함께 거주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으며, 그래서 떨어져 거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아브람과 롯이 분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7. 그리고 아브람은 롯에게 거할 장소를 선택하게 하는데, 롯은 동쪽에 있는 요단 지역을 선택한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세기 13:10). 롯이 아브람에게 선택권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앞으로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다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적으로 그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그들이 어느 지역을 선택하든, 여건은 비슷했을 것이고,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람이나 롯이나 그 땅을 차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그저 그곳 원주민들 곁에서 이방인으로 거주할 따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8. 분가 후에 롯은 자신이 선택한 요단 지역으로 가서 여기저기 살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소돔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서 엘람과 그 동맹국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약탈했는데, 그때 그들이 롯과 부녀자들, 친척들을 강제로 데려가고 그들의 재산도 약탈했다(창세기 14:1-12). (“부녀자”들이라는 말은 롯이 소돔에 거주하면서 결혼을 하고, 딸들을 낳았음을 암시한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람이 병사들을 데려가서 사람들과 재산을 되찾아왔다(창세기 14:13-16). 이 일은 롯에게, 특히 롯의 아내와 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고,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9.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에 두 가지 소식(이삭 출생, 소돔과 고모라의 범죄 조사)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아브라함을 방문했던 두 천사가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에 이르렀을 때, 그들을 지극 정성으로 맞이한 사람은 바로 롯이었다. 롯이 그들을 환영하는 모습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두 천사를 영접한 것과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과 롯은 정말 닮았다. 롯은 손님 대접하는 법을 아브라함에게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10.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두 천사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자리에 눕기 전에 소돔 남자들이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롯이 아무리 그들을 달래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롯의 집에 온 두 천사들과 성관계를 맺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도대체 무엇에 홀려서 그처럼 폭력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롯이 그들을 애써 달랬지만, 그들은 오히려 롯을 해하려고 그에게 달려들어서 문을 부수려 했다. 그들의 막강한 폭력을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다. 두 천사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잠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더 큰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즉, 성이 유황불로 타서 멸망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의 비상상황에서 가장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롯의 두 딸이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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