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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예레미야 읽기를 시작하며

by 다니엘심 2015. 1. 1.

한희철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

 

 예레미야 읽기를 시작하며

 

언젠가 주보 표지에 예레미야를 만나면이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다.

 

그럴 수 있다면 언제고 예레미야를 만나 실컷 울리라

여전히 젖어 있는 그의 두 눈을 보면 왈칵 눈물이 솟으리라

당신께는 주님의 말씀 백성들에겐 귀찮고 하찮은 말

그 사이에 서서 울먹울먹 하던

다시는 주님 말씀 전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때마다

뼛속을 따라 심장이 타들어가던

당신의 뒷모습엔 늘 눈물이 어렸노라고

겨울밤 인우재에서 듣던 낙숫물처럼

어둠 속 떨구던 당신의 눈물 소리 쟁쟁했노라고

애써 적은 주님의 말씀 서걱서걱 왕의 칼에 베어질 때

내 마음도 베였노라고

마침내 당신 웅덩이에 던져졌을 때 나도 갇혔고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 달아 내린 헝겊쪼가리와 낡은 옷에

이게 설마 하나님의 손일까

나도 덩달아 울었노라고

언제고 예레미야를 만나면 함께 울리라

당신만큼은 아니어도 당신으로 많이 아팠노라고

그만큼 고마웠노라고

 

왜 그럴까, 예레미야를 생각하면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눈물의 근원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정이나 정서의 웅덩이가 얼핏 잇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괜히 눈물겹고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는, 예레미야를 읽다보면 자주 그런 마음으로 멈춰 서곤 한다.

 

그 예레미야를 다시 한 번 읽어나가기로 한다. 성경을 펼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더듬거리는 심정으로 읽기로 한다. 대단하거나 특별한 것을 찾아내려는 욕심을 버리기로 한다. 다만 정직한 마음으로 읽도록, 예레미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심정으로 읽기로 한다.

 

성경은 일부러 <국한문개역한글판>을 택했다. 아들이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고맙고 대견하게 여긴 부모님이 사 준 책이 <국한문개역한글판> 성경이었다. 세로로 쓰인 것도 그렇고 순간순간 만나게 되는 한문도 낯설게 여겨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다른 성경을 찾아 비교를 하든지, 사전을 찾아야 했는데 그 또한 유익한 경험이었다.

 

<국한문개역한글판> 성경 또한 한 시대의 산물, 한문이 익숙했던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어떻게 말씀을 이해했을 지를 살피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세상은 어지럽고 어수선하다.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 사이에 서서 속이 타들어가던 사람 예레미야는 이 시대를 어떤 걸음으로 걸어가야 할지를 넌지시 일러줄 것이다. 터가 흔들리는 이 시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하나님의 방법(1:1-3)

 

"베냐민 땅 아나돗의 祭司長 中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아몬의 아들 유다 요시야의 다스린지 十三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여호야김 時代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시드기야의 第 十一年 末까지 하니라 이 해 五月에 예루살렘이 사로 잡히니라."

 

예레미야는 주전 587년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부름을 받아 수십 년 동안 예언자로 활동을 한다. 나라가 가장 흔들리던 때였다. 바벨론의 침공을 비롯한 정치적인 변혁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때였으니 격동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 셈이다.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흔들리던 시대, 하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택하여 당신의 뜻을 말하게 하였다. 중심과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택하고, 말씀을 통해 중심과 방향을 찾게 하신다.

 

예레미야는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출신인데,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km쯤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스라엘의 중심 예루살렘이 사로잡혔을 때, 하나님은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사람을 사로잡으신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눈여겨보고 계시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가 누구지, 하는 이를 눈여겨보신다.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을 눈여겨보시고 그를 중심으로 불러내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다르다. 결국 인간의 생각에 갇히면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할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게 된다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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