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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by 한종호 2015. 3. 2.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臨)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對答)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예레미야 1:11-12).

예레미야를 부르신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물으신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 하지 않는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관심의 방향과 내용일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 물으신 것은 네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를 물으신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모두가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본다고 해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 하는 것에 따라 보는 것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문에는 보는 것과 관련하여 見(견), 視(시), 觀(관), 看(간), 覽(람) 등 다양한 단어가 있다.

‘견’(見)은 사물의 외형이나 현상을 자기식대로 보는 것이어서, 의견과 견해의 차이로 인해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視)는 어떤 입장에서 보는 것으로, 보는 입장에 따라 시각차가 드러나게 된다. 노사(勞使) 간의 갈등도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관’(觀)은 중심에서 보는 것으로, 꿰뚫어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겉이 아니라 속을 응시하는 것이다. 중심에서 보니 치우침이 있을 수가 없다.

‘간’(看)의 글자 모양을 보면 ‘눈 목’(目)자 위에 ‘손 수’(手)자를 얹었으니, 눈 위에 손을 대고 바라보는 것이다. 손으로 빛을 가리며 자세히 살펴보는 모습으로 세심하게 살핀다는 의미가 있다. 그냥 대충 보아 넘기는 것은 ‘간과(看過)한다’고 한다.

‘람’(覽)은 살펴보고 견줘 보는 것인데, 미술 전람회(展覽會)나 도서 열람실(閱覽室)의 ‘람’(覽)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같은 것을 보아도 보는 마음에 따라 이렇게도 의미가 달라질 수가 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볼 수도 있고, 바위 속을 꿰뚫듯 통찰할 수도 있다. 말씀을 대할 때도 다르지 않을 터, 같은 말씀을 대해도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뜻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마음의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것이다. ‘고운 사람 미운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데 없다’는 우리 속담은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물은 질문을 다시 보니 “무엇이 보이느냐?” 묻지 않으시고 “무엇을 보느냐?” 묻고 계시다.

주님의 질문 앞에 예레미야가 대답을 한다.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그러자 주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다는데, 왜 주님은 잘 보았다고 하신 것일까? 이어서 하신 말씀,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는 말씀은 선문답 같기도 한데, 그 말씀은 살구나무를 보았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우리가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 있다. 히브리어로 ‘살구나무’는 ‘샤케드’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보다’는 말은 ‘쇼케드’이다. 우리말로는 ‘살구나무’와 ‘지켜보다’는 말이 전혀 상관없는 말로 들리지만, 히브리어 ‘샤케드’와 ‘쇼케드’는 발음이 서로 비슷하다. 지금 성경은 서로 비슷한 단어를 통해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살구나무는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구나무가 겨울에도 전혀 잠을 자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예레미야가 살구나무를 보고 있다고 대답했을 때 주님께서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하신 것은, 살구나무가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깨어 지켜보고 계시다는 뜻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만 맡기신 것이 아니었다. 맡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깨어 지켜보고 계신 것이었다.

네가 지금 살구나무(샤케드)를 보듯이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쇼케드) 말씀 하셨을 때, 예레미야의 가슴은 얼마나 떨렸을까? 필시 주님의 말씀은 예레미야의 가슴에 조각하듯 새겨졌으리라.

내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주님께서 깨어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말씀 앞에 더욱 깨어 있을 터, 말씀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말씀 앞에 깨어 지켜보고 계시다는데 하물며 우리들일까!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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