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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꽃자리

by 한종호 2019. 11. 22.

신동숙의 글밭(3)

 

 

꽃자리

 

거의 대부분의 사진이 제가 살고 있는 집과 작은 마당, 집 앞 강변의 풍경들입니다. 글감도 주로 일상의 소소하고 흔한 모습을 담다보니 사진도 그에 어울리는 소박하고 때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습들이 대부분입니다.

 

신기하고 감사한 건, 손톱보다 작은 풀꽃, 땅을 구르던 낙엽 한 장도 사진으로 담아 놓고 보면은 이렇게 예뻤던가 싶어 새로운 눈을 뜨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답니다. 눈 여겨 보는 일. 아무리 작고 하찮은 대상도 마음을 기울이고 눈 여겨 보아주면 아름다운 순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사진을 통해서도 보게 됩니다.

 

며칠전에 벗님들의 포스팅을 읽던 중, 유난히 제 눈길을 끄는 사진이 한 장 있었습니다. 적힌 이름을 보니 분홍 동백꽃. 복사꽃보다는 연하고 매화꽃보다는 살짝 짙은 분홍 동백꽃. 쉽게 연분홍이라 부르려다가 그 연하고 순한 분홍빛에 마음은 이미 첫사랑의 설레임으로 없는 듯 떨려오는 것입니다.

 

 

 

눈보다는 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보다는 침묵과 묵상에 기대어 내면으로 시선이 향하는 일에 익숙해진 생활입니다. 햇살이 비추는 찬란한 색들의 향연에 감탄을 하면서도 제 의식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 민감합니다. 그러다보니 옷을 갖춰 입는 일과 꾸미는 일엔 무심해지고요. 검정색, 남색, 흰색, 아이보리색, 회색 옷들에 먼저 눈이 갑니다. 아주 드물게 유채색의 옷을 고를 땐 인디언 핑크나 은은한 연분홍으로 마음과 몸이 괜스레 들뜨지 않도록 단도리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광주 어디쯤에서 찍었다는 연분홍 동백꽃. 퍼 가도 되는지 여쭈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십니다. 이 가을날 아름답게 피어 괜스레 제 마음을 설레게 만든 연분홍 동백꽃 한 송이. 이렇게 꽃 얘기를 꺼내는 건 어여쁜 꽃을 보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 때문입니다. 글과 글로 만나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페친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이웃이 아닌가 싶은 것은.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데는 글만큼 가까운 길이 또 있을까 싶어서 입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비추어 나를 읽는 적극적인 행위.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시선이 내면으로 향하는 일.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내면으로 뿌리 내림.
글이 길이 되는, 그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 내면의 여행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길도 다름 아닌 말씀과 글이기에.

 

그 내면의 여행길에서 바라본 풍경이 처음엔 어두운 무채색에 가까웠습니다. 자연과 좋은 책, 좋은 벗이 곁에 있다면 그 순례길이 그리 어둡고 춥지 만은 않을 텐데요. 한 알의 씨앗이 발아하여 걸어가는 길은 하늘로만 향해 있지 않습니다. 분명 어둡고 보이지 않는 뿌리 내림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침묵과 기도와 묵상의 시간은 진리에 뿌리를 내리는 고요한 시간이 됩니다. 골방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는 꽃자리입니다.

 

뿌리를 깊이 내릴수록 가지는 더 높이 자랄 테지요. 바깥으로만 자라는 식물은 없을 테니까요. 균형 있게 잘 자란 나무와 줄기에선 저절로 꽃이 피고 잎이 피어남은 자연의 이치요. 또한 그대로 자연을 닮은 우리네 삶도 그렇듯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꽃을 볼 때면 뿌리를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실상을 볼 때면 보이지 않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첫눈이 온다는 소식이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잎을 다 떨군 나목을 바라보면서 침묵 속 뿌리를 묵상하기에 알맞은 계절, 고요하고 거룩한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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