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8)
사람은 언제 아름다운가
하나님의 어둠은 빛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든 피조물이든 간에
모든 생명의 뿌리에 닿아 있는 역설이다.(매튜 폭스)
장애를 날개로
언젠가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임윤아 작가의 전시회 ( <윤아의 그림 이야기>)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임윤아는 막 대학을 졸업한 25살의 젊은 작가였다. 그는 선천성대사효소결핍증(페닐케톤뇨증)이라는 희귀장애를 지금도 앓고 있다. 효소의 결핍으로 뇌세포가 손상되어 발달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손을 움직여서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들이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 15시간 이상을 화폭에 매달리며 예술혼을 불태운 결과 불치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벌써 두 번째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때 일주일 전에 보내온 전시회 초대장에 쓰인 작가의 말에 감동하여 전시회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작가는 그 초대의 말에서 고통스런 예술적 체험에서 우러난 듯싶은 고백을 이렇게 들려준다.
“나의 몸이 유난히 떨리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날개가 돋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작가의 고백을 읽는 순간 뜨거운 전율에 사로잡혔다. 마치 무슨 벼락이라도 맞은 느낌이랄까….
전율의 순간이 지난 뒤, ‘하나님의 어둠은 빛’이라는 말이 작가의 말 위에 포개졌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하나님의 어둠의 심연을 꿰뚫어 본 것일까. 장애의 고통이 그런 깊은 안목을 갖도록 만든 것일지도!
그날 나는 전시회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회자가 갑자기 나에게 축사를 하라기에 떠밀리듯 나아가 우리 길잡이의 말을 이렇게 바꾸어 버렸다.
“윤아의 어둠은 빛입니다…윤아의 고통은 축제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울 때
하나님은 피조물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십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여러분 안에 모셔 들이기만을 바라십니다.
피조물의 속성은 덧없음이다. 피조물은 반드시 소멸한다. 반드시 소멸할 피조물에 집착하는 한 불멸의 신성을 모실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길잡이는 피조물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이 시작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어떻게 피조물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 덧없음을 자각하면 된다. 그 필멸(必滅)을 자각하면 된다. 덧없음의 자각, 필멸의 자각은 불멸의 생명을 깨닫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지 않는가.
이러한 자각 속에 살았던 예수는 말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말고는 아무도 하늘로 올라간 적이 없습니다”(요한복음 3:13)
예수는 항상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자각 속에 살았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자기 속에 불멸의 생명이 깃들여 있다는 깨달음 속에 살았다.
우리도 그런 깨달음 속에 산다면, 소멸할 피조물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나’ 혹은 ‘나의 것’이 있다는 어리석은 집착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벗어날 때만큼 아름다울 때가 또 있던가.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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