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7)
내려갈 때 보았네, 그 꽃!
깊고 아름다운 눈
자비는 하나님에게 딱 들어맞는 옷으로
영혼을 감싸서 신성하게 치장해줍니다.
인도의 성녀로 불렸던 마더 데레사가 살아 있을 때 한 신문 기자가 찾아가서 물었다.
“수녀님은 어떻게 거리에 버려진 고아들, 병자들, 노인들을 데려다 돌보며 그토록 사랑할 수 있습니까?”
데레사 수녀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나에게는 그들이 그리스도로 보입니다.”
어떻게 이런 깊고 아름다운 눈을 지닐 수 있을까. 타인은 물론 자기 안에 살아계시는 ‘자비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입고 있던 파란 줄무늬의 옷을 볼 때마다 그것이 신성하게 느껴졌던 것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속성인 자비가 그들의 영혼을 감싸고 치장해 주었기 때문일까.
내려갈 때 보았네, 그 꽃!
깊이를 알 수 없는 신성의 가장 높은 부분은
겸손의 심연에 자리 잡은 가장 낮은 것에 굴복한다.
어떤 사람이 진실로 겸손하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신성을 포기하고 그것을 완전히 버리거나,
아니면 몸소 그 사람 속으로 송두리째 들어갈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현대 기독교 영성의 대가로 불리는 헨리 나우웬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그는 명문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명망 있는 교수였다.
그가 쓴 50여 권이 넘는 저서는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그런 나우웬이 어느 날 많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아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에서 아담이라는 정신지체아와 함께 지내는 일을 택했다. 그가 하는 일은 정신 지체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헨리 나우웬에게 물었다.
“대학자가 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느냐?”그 때 나우웬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 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달려 왔다. 그런데 한 장애인을 만나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르막길에서는 ‘나’만 보일 뿐이다.”
그렇다. 성공과 인기, 명예, 또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향한 오르막길에 도취하면 타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자기만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의 나르시스처럼 자기에 도취해 있는 사람은 결코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른다. 사랑은 자기를 상실하는 것인데, 자기를 상실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국 타인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도 파멸에 이르고 만다.
헨리 나우웬은 오르막길이 아닌 내리막길에서 비로소 자기의 ‘참 모습’(그리스도)을 만났음을 고백한다. 한국의 한 시인도 나우웬이 겪은 것과 같은 아름다운 고백을 들려준다.
내려갈 때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그 꽃>
고진하/시인, 한 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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