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헌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6)

 

마지막 헌사

 

<박인수와 음악친구들> 음악회를 준비하며 적잖은 문화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모인 자리에서 음악회 소식을 알렸을 때, 교역자들의 반응이 무덤덤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아니, 박인수 씨가 온다니까!” 하며 강조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30대인 부목사와 전도사들은 박인수라는 이름을 몰랐다. 이동원도 몰랐고, ‘향수’라는 노래도 몰랐다.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싶은 것은 내 생각일 뿐,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찾아들던 당혹스러움은 참으로 컸다. 박인수 씨가 찾아와 노래를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생각했던 것은 세대차를 고려하지 않은 쉬운 생각이었던 것이다.

 

음악회가 열리는 오후,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이 있을 터이니 인사를 해야지 싶어 예배당 로비에 서 있었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교우가 아닌 분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나이가 지긋한 분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와선 정우송 장로님을 찾는다. 이번 음악회는 정장로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음악회였다. 박인수 씨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교우가 정장로님을 찾는 동안 어떤 관계이신지를 조심스레 여쭙자 친구라 하신다. 잠시 뒤 정장로님이 찾아왔고, 두 분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음악회가 열리는 예배실 안으로 들어갔다.

 

 

음악회가 시작된 뒤 보니 가운데 줄 맨 앞에는 정장로님 친구분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뒷모습,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 찾아온 친구 중에는 30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아 노래를 듣는 친구들, 친구로 지내온 세월이 60년이 넘는 세월, 오랜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또 한 명의 친구 박인수, 노래를 들으면서도 자주 눈길과 마음이 그분들께로 갔다. 고향을 지키고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모처럼 옛 친구들이 모였지 싶었다.

 

순서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노래는 즉흥적으로 이어졌다. 마음가는대로 정해서 불렀는데, 어느 노래를 택하든 마치 오랜 시간 연습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따로 앙코르를 요청하지 않아도 많은 노래가 이어졌다. 박수가 그치지 않으면 다시 노래를 이어가곤 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정말로 마지막 노래를 부를 때가 되었다. 마지막 노래로 택한 것은 ‘고별의 노래’였다. 학창시절 음악교과서에도 실렸던 그 노래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럴수록 마음을 담아 불렀다. 

 

서편의 달이 호숫가에 질 때에
저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
사랑빛이 감도는 빛난 눈동자에는
근심어린 빛으로 편히 가시오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 할까나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시오.

그대의 꿈에 비치던 그 달은
아침 비칠 때 어디로 갈까
검은 구름 위로 이리저리 퍼질까
장미 동산 안으로 숨어 있을까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할까나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시오

 

아무리 세월을 잊고 노래를 한다지만 올해 여든 둘인 박인수 씨, 그가 친구인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워 음악회를 찾아와 앞줄에 나란히 앉은 백발의 친구들, 음악회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는 음악회의 마지막 곡만은 아니지 싶어 마음이 숙연했다.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시오.’

지구라는 별에서 만난 오랜 친구들에게 바치는, 마지막 헌사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