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8)
여기 모인 내 오랜 친구들
음악회를 모두 마친 뒤 대기실에 모였다. 출연자들과 박인수 씨 친구들이 모여 다과를 나눴다. 오랜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격의 없는 대화들이 정겹고 소중했다. 세월을 잊은 장에서 풍겨나는 깊은 맛 같았다. 다른 일정이 있는 이들이 먼저 일어나야 했을 때, 박인수 씨가 정우송 장로님께 툭 이야기를 건넸다.
“오늘 저녁 사줄 거니?”
장로님이 흔쾌하게 대답을 했다.
“그럼, 먹고 싶은 거 뭐든지 살게.”
장로님의 대답에 박인수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치 같은 제안을 받은 한 아이가 어떤 대답을 할지 대답을 아끼는 것 같았다.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 나도 궁금해졌다. 마침내 대답을 했다.
“우리 짜장면 먹자!”
“아, 거기. 좋지!”
박인수 씨의 제안에 정장로님도 선뜻 동의를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와 대답이 너무 재미있어 웃음이 났다. 짜장면을 택한 것은 하나의 메뉴가 아니라 마치 옛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택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대화가 오갔지만 그날 저녁은 평창동에 있는 <북악정>으로 정해졌다. 이야기한 짜장면 집으로 갈 시간이 되지 않는 이가 있어 가까운 곳으로 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갈빗집으로 유명한 <북악정> 테이블에 둘러앉자 다시 옛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은 당장 그 시절로 돌아가는 법이다. 뭔가 둑이 터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마치 잘 익은 콩이 툭 툭 콩대 콩깍지에서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절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마음에 담겨 있던 옛 시간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참석한 친구 중에는 마침 평창동에 사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나라 인테리어 업계의 선두주자가 되는 회사를 이끌어 온 분인데, 우리 동네에 왔으니 오늘은 자신이 저녁을 사겠다며 맘껏 드시라며 인사를 했다. 하긴, 점심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을 터이니 음악회에 출연했던 분들은 몹시 배가 고팠을 터이었다.
상이 차려지기 시작했을 때 기도를 부탁받았다. 기도를 드리기 전 잠시 소감을 이야기했다.
“제가 좋아하는 곡 중에 수사네 룬뎅의 ‘여기 모인 내 오랜 친구들’이라는 게 있습니다. 연주도 좋지만 제목이 좋아서 더 좋아하는 곡인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을 뵈니 그 제목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싶습니다.”
아름다운 만남에 대한 감사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우정이 날로 깊어지기를, 그리고 오래 나눌 수 있도록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그랬다, ‘여기 모인 내 오랜 친구들’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창밖 어둠 속으로 눈이라도 펑 펑 내렸으면 싶은,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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