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46)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마당가 복순이 물그릇에 담긴 물이 껑껑 얼었습니다. 얼음이 껑껑 얼면 파래가 맛있다던 친정 엄마의 말씀이 겨울바람결처럼 볼을 스치며 맑게 지나갑니다. 개밥그릇엔 식구들이 아침에 먹다 남긴 삶은 계란, 군고구마, 사료를 따끈한 물에 말아서 부어주면 김이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면 복순이도 마음이 좋아서 잘도 먹습니다.
거리마다 골목 어귀마다 눈에 띄는 풍경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밤길을 환하게 밝히는 붕어빵 장사입니다. 검정색 롱패딩을 입은 중·고등학생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선 젊은 엄마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퇴근길의 아버지가 재촉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서 착하게 기다리는 집. 따끈한 붕어빵 종이봉투를 건네는 손과 받아든 얼굴이 환하고 따끈하기만 합니다.
요즘은 붕어빵 두세 개에 천원을 합니다. 옛날 제가 중학생 때 붕어빵 한 개에 오십원 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저녁 시간 오고가는 학원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붕어빵. 조금씩 사먹던 붕어빵을 실컷 먹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던 어느날, 천원을 들고 붕어빵 집으로 달려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중·고등학생 버스 요금으로 종이 회수권이 있던 시절, 회수권이 100원에서 150원으로 오르던 때라 학생 용돈으로 천원은 큰돈이었습니다. 혼자서 스무 개의 붕어빵을 놓고 물리도록 먹어도 열 개를 채 못 먹었던 그때의 기억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하나 둘 제과점이 생기고, 노점상 단속이 심해지면서 겨울철이면 늦은 밤까지 귀갓길을 환하게 밝혀주던 붕어빵 장사도 눈에 띄게 줄어든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이 거리 상권을 점령해버리고, 치킨과 피자 등 배달 음식에 잠시 밀려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붕어빵은 가격의 문턱이 낮아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가까운 착하고 따뜻한 고마운 양식이 되어줍니다.
- 그림 : 신가영 작가 (이오덕 선생님의 '감자를 먹으며'의 삽화)
6·25 동족 상잔의 비극 이후,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 길거리에서 생겨난 먹거리 중에는 풀빵인 국화빵과 붕어빵, 호떡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뜨거울 만큼 온기를 머금은 거리의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때 그 시절 대부분의 장사들은 길바닥이 생계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차츰 장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경기의 큰 바람이 한 차례씩 불어올 때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던 노점상 단속. 국가 정책에서 볼 때 노점상은 말끔하게 치우고 싶은 가난한 시절의 그림자일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이 나라가 딛고서 다시 일어선 곳은 척박한 이 땅, 길바닥이라는 고마운 사실입니다. 땅과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성품은 흙의 온순함을 닮아 선함을 봅니다. 거리에 장이 서는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겹고 닫히고 끊어졌던 마음과 마음이 강줄기처럼 이어짐을 봅니다.
춥고 배고프고 어둡던, 겨울과 같은 그 어려운 시절에 겨울나무가 된 선조들과 부모님 세대들이 있습니다. 맨몸으로 길바닥에서 농촌의 흙을 일구듯 온몸으로 도시의 삶을 일구어 온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의 피, 땀, 눈물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이처럼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우리 선조들이 그와 같이 지나온 추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일 테지요.
숨가쁜 경제 성장이 거리에서 깨끗하게 치운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골목마다 뛰어 놀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저녁밥 짓기 전에 모여 앉아 저녁 찬거리를 얘기하던 새댁들의 재잘거림도
어디론가 들어가버렸습니다. 생계와 생활과 놀이의 터전이었던 길과 골목이 찻길과 주차장이 되어버린 차가운 풍경들.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해 걸어가야 하는 거리의 행인들.
오늘날 붕어빵 장사 곁으로는 언제나 주차된 차가 있거나 시동을 끄지 않은 정차된 차가 멈추어 있기도 합니다.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눈에 겨울 밤거리의 붕어빵 장사는 어떤 풍경으로 다가갈런지요. 가끔 엄마의 입장에선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답니다. 앞으로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과 도로가 있다면 걷고 싶은 거리, 틈틈이 식물을 심어서 안전하고 맑은 거리를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은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여러 시절을 지나며 한 때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붕어빵 장사가 올 겨울엔 유난히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추운 겨울 밤거리에 온기를 가득 머금은 환한 등불, 붕어빵 장사가 그저 반갑고 고맙습니다. 오래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의 생계 자립을 돕는 지원 사업으로 유행을 타기도 하며 꿋꿋하게 겨울 밤거리를 지켜온 붕어빵 장사가 지켜온 것은 사람을 향한 온기인지도 모릅니다.
숨 막히는 건물로부터 거리로 내몰리듯 자연스레 모여드는 움직임이 이 나라 이 땅 곳곳에서 일어남을 봅니다. 들에 풀꽃처럼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버스킹, 거리 공연으로 세상과 소통하고픈 젊은 청년들이 둥글게 모여드는 곳도 거리입니다. 푸드 트럭으로 창업을 시작하는 곳도 길입니다. 유럽 나라들 중 국민 행복지수가 높은 곳은 개인 사장이 많은국가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 시대가 더불어 피운 꽃, 촛불집회의 꽃자리가 된 곳도 건물이 아닌 바로 길, 길바닥입니다. 길은 소통과 희망이 싹트는 땅, 목마른 이들에게 살아있는 샘. 내가 한 방울의 물이라면 낯선 세상과 조화롭고 아름답고 맑게 섞여서 흘러가야 할 첫 만남의 장소. 건물보다 먼저 있어온 길거리는 도시의 강줄기입니다.
초저녁 잠에서 깬 뒷좌석에 앉은 아들에게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줍니다. 짧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붕어빵은 어떻게 들고 가야할까요?'라며 물었더니, 아들은 '손에'라며 귀찮은 듯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짧은 대답을 툭 내뱉습니다. 장난끼가 오른 엄마의 '땡!'이라는 평가에 아들은 잠이 마저 깼는지 뒷좌석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썩입니다.
'따끈한 붕어빵은 옷 속에 넣고 가야지. 이왕이면 가슴에 품고 가면 더 좋고, 그러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가슴도 따뜻해지고 붕어빵도 식지 않는다.'고 말해줍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의 첫날,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이 따뜻하기만 합니다. 온기를 듬뿍 머금은 따뜻한 말이 올 한 해 마지막 날까지 동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와 사랑과 행복을 가득 담은 덕담 한 봉투. 그 온기가 식지 않도록 따끈한 붕어빵 한 봉투처럼 가만히 가슴에 품어 보는 건 어떨까 싶은 그런 새해 첫날의 첫 마음입니다.
'신동숙의 글밭 > 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릎을 땅으로 (0) | 2020.01.04 |
---|---|
설거지산을 옮기며 (0) | 2020.01.02 |
무말랭이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 (2) | 2019.12.31 |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2) | 2019.12.30 |
'기뻐하라'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2) | 2019.12.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