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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by 한종호 2019. 12. 30.

신동숙의 글밭(45)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작은 찻잔에 담긴 차 한 잔이 있습니다. 내려오던 햇살은 율홍빛 속에 머물고, 차향은 30년 전 스치운 푸른 바람 냄새를 아련히 기억합니다.

 

천천히 서너 모금으로 나누어 마십니다. 그리움으로 출렁이던 잔은 빈 잔이 되고, 빈 잔은 하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빈 잔 바닥에 내려앉은 햇살은 한 점 하얀 별빛으로. 없는 듯 계시는 빛의 하나님이 잠시 내려앉아 고요히 머물러 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찻잔에 담긴 찻물을 비우는 순간 얼른 들어차는 하늘처럼 허전한 나를 하늘로 채우길 원합니다. 나의 좁은 창문을 열면, 작고 여린 가슴으로 밀려드는 공허감, 무력감, 가난한 내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길 원합니다.

 

이제는 알든 모르든 내 안에 있는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패인 상처와 어둔 골짜기가 하늘로 온통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빈틈도 없으신 하나님, 잠잠히 내 영혼이 하나님 사랑 안에 머물러 평온한 쉼을 얻는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호흡지간에 삶과 죽음이 함께 있음을 봅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처음을 살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한 발짝 더 죽음에 가까운 연약한 몸과 마음입니다. 채우려 하기보다 먼저 길고 깊은 날숨으로 비우게 하소서. 비우면 저절로 들어차는 들숨처럼 채워 주시는 은혜 만큼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있게 하소서. 오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기도가 선한 한 줄기의 물길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낮고 낮은 땅, 작고 어두운 집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흘러가게 하소서. 외진 골방에서 눈물로 적셔진 심령이 하나님 사랑 안에 머물러 평온한 쉼을 얻는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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