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67)
소욕지족 소병소뇌 (少欲知足 少病少惱)
운전을 할 때면 라디오 클래식이나 평화방송, CBS, EBS교육방송 중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돌려 가면서 듣고는 합니다.
요즘은 그 어느 것도 성에 차지가 않아서 법정스님의 육성문법이나 이야기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번갈아 가며 듣고 있는 중입니다. 거듭 되풀이해서 들어도 매번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말씀들입니다. 두 분의 공통점은 설교 안에 이야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빠지지 않고 삶의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불경이든 성경이든 또는 옛 선현들의 지혜가 깃든 고전과 한시도 좋고, 주변의 그야말로 작고 소박한 소재들로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것이지요. 단지 경전 속 알멩이만을 전달하기 위해 적어도 목청을 돋우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법문과 설교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매일 매 순간 식으려 하고 삭막해지려는 거친 제 마음밭을 일구는 일이 됩니다. 따뜻한 이야기 한 자락에는 마음을 다독여주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픈 곳에서 피운 눈물꽃. 그 홈이 패인 곳에 씨앗을 심는 감동스런 이야기꽃. 의미있고 가치가 있으면서 재미난 이야기들. 눈물과 웃음과 감동과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더불어 걷는 이야기 산책길인 것이다. 권위도 경계도 사라진 맑고 환한 하늘입니다.
법정스님의 법문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법정스님이 해인사에 머무시는 동안 자운스님께 안부 편지를 드렸는데, 노스님으로부터 펜글씨로 또박또박 눌러쓰신 여덟 글자의 답장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소욕지족 소병소뇌(少欲知足 少病少惱)
작은 것으로 만족하고, 몸에 병이 적고 머리에 생각이 적고.
작고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자.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보다는 작고 적은 것 속에 있다.
작고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있다.
이 말씀은 이미 알고 있고, 오랜동안 들어왔고, 평상시에도 거듭 새기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을 때마다 샘물을 들이킨 듯 시원하고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진리는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생명에겐 해와 물 같은 존재니까요. 흐르는 개울물은 개울물이지만 한 번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이치처럼요. 진리의 말씀도 매 순간이 늘 새로움입니다.
법정스님은 고백하십니다. 그 어느 긴 글보다도 이 짧은 여덟 글자가 평생을 가슴에 새겨 두고 함께 걸어온 말씀이라고.
저도 아직 읽어 본 적 없지만, 법정스님의 말을 옮기자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E.F. 슈마하의 책이름이다. 이 책의 부제(副題)는 '인간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의 연구'라고 달고 있다. 돈을 가지고도 살 수 없는 비물질적인 가치 즉 아름다움과 건강과 조화의 새로운 인간생활을 부흥시키는 일이, 미래의 인간에 대한 우리들의 의무라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작은 것이 아름다움은 굳이 경제적인 영역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름답다.([물소리 바람소리] 中 '작은 것이 아름답다', 法頂)
계속 운전을 하면서 충전기에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법문을 듣던 중. '소욕지족 소병소뇌'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아멘!" 이라고 화답을 합니다. 그러면서 또 혼자서 웃습니다.
소나무 밑에 흙이 검은빛이 도는 게 참 기름집니다. 솔갈비입니다. 솔잎이 그대로 떨어져서 예전의 흙과 섞이며 좋은 산거름이 되었습니다. 노지에 심겨진 차나무 밑에다 깔아주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솔갈비는 잡초와 해충도 막아주면서 돌의 냉기만 먹던 뿌리에 소나무의 맑고 청정한 기운까지 더해주는 좋은 거름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천 년도 더 이전부터 차나무가 소나무 밑에서 뿌리를 내리며 더불어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도 야산의 차나무처럼 청정한 이를 닮은 소나무 그늘 아래서 살아간다면 불쑥불쑥 잡초처럼 올라오는 허물도 염려도 그 아래서 덮이고 맑아지고 익어서 또다시 좋은 거름이 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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