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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 한다발

by 한종호 2020. 2. 3.

신동숙의 글밭(72)

 

아름다운 마음 한다발

 

'새벽 다섯 시 무렵의 숲은 온통 새들의 노래로 찬란한 꽃밭이다. 공기 그 자체가 새소리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안개와 이슬에 젖은 나무들의 새벽 잠을 깨우려는 듯, 이 골짝 저 골짝에서 온갖 새들이 목청껏 노래를 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기쁨을 온몸과 마음으로 발산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시각 인간의 도시도 서서히 깨어날 것이다. 시골에서 밤새껏 싣고 간 꽃이나 과일이나 채소를 장바닥에 내려놓기가 바쁘게 도시의 부지런한 사람들이 먼저 반길 것이다. 첫 버스를 타고 시장으로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른 아침 길을 쓸고 있는 청소부들은 비록 생계는 어렵지만 모두가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농촌 출신이므로 일찍 일어나는데 길이 들었다. 늦잠 자는 사람들을 위해 일찍부터 움직여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간으로써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 남이 잠든 시각에도 일어나 움직여야 굶지 않고 헐벗지 않는다.

 

그러한 이웃들에게 나는 이 새벽, 길섶에 피어 있는 붓꽃이나 나리꽃을 한아름씩 안겨드리고 싶다. 어려운 생계를 위로하면서 희망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람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한, 바캉스가 뭔지도 모르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한, 언젠가는 복된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法頂 隨想集 [물소리 바람소리] 中 '새벽길에서', 1983.8)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법정스님의 붓꽃같은 마음 한다발입니다. [무소유]부터 연대순으로 다시 읽는 법정스님의 글은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이 듭니다. 그 마음이 걸어간 길목마다 맑고 아름다운 꽃향기에 취해서 읽다가 책장을 덮고는 창문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다가, 먼 산도 바라보다가, 그만 주저앉아 발아래 풀꽃 곁에 머물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는 합니다.
 
법정스님의 글은 조용한 자리에서 읽어도 좋지만, 나무숲   산책길에 소리내어 두런두런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그 누군가라도 앉혀 두고 잔잔히 읽어 주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 한다발 나누고픈 마음이 늘 그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숲과 마음 산책길에 길어올린 맑은 샘물을 마을로 흘려 보내시는 그 나눔과 사랑 앞에 저는 늘 주저앉고만 싶어지는 것입니다. 매순간 스스로를 일으켜 그 길을 따라 살아가고픈 원을 또다시 세우게 됩니다. 한 영혼의 맑고 아름다운 삶 앞에 고마운 마음 한다발 올려드립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저는 법정스님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예수의 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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