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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

by 한종호 2020. 4. 28.

신동숙의 글밭(139)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

-우체국 집배원 편-


하루를 살다가 더러 아플 때가 있습니다. 아픈 이유는 많겠지만, 맨 처음 이유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맨 처음의 이유입니다.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아픔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없다면 아픔도 없는 것인지, 아픔 너머의 세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이유로 아픔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온갖 셈으로 헤아리다 보면, 태어난 날로부터 오늘날까지 본전을 따져 보아도 밑지거나 억울해할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람한테 위로를 받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추스르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려선 알 수 없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마음이 거인처럼 커질 때면, 마을 뒷산 바위산에 올라가 바위에 앉아서 하늘도 보고 장난감처럼 작아진 마을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있다가 마음이 구름처럼 가벼워지면 털고 일어나 산을 내려오곤 하였습니다.


내려오던 산길에는 작은 풀꽃들이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토끼풀로 반지와 팔찌도 만들고, 배춧대를 꺾어서 껍질을 벗겨 먹으며 토끼처럼 폴짝 폴짝 산길을 내려오던 추억이 생생합니다. 그때의 마음이 이어져 지금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하늘입니다. 


그렇게 하늘로 이어진 마음 속 우주를 홀로 유영하다 보면, 밤하늘의 별처럼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주위에 가까운 얼굴일 때도 있지만, 먼 하늘의 별처럼 알지 못하는 얼굴들도 가까이 와서는 어느덧 한데 섞입니다. 하늘 안에선 가족과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없습니다. 마음 안에선 나와 너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작은 별 언덕 위에 서서 "나는 외롭다!"고 세 번 외친, 어린왕자의 수많은 저 별들 중에서 유난히도 빛나는 별 하나에 마음이 머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하나의 별은 가장 큰 별입니다. 가장 큰 별은 가장 아픈 사람입니다. 이 세상 어디선가 저보다 더 아픈 사람이 됩니다. 


높고 먼 밤하늘을 올려다 보던 그 헤아림은 어느새 가장 낮고 작은 땅을 비추고 있습니다. 뒷산 바위산을 내려오면서 만나던 토끼풀, 배추꽃, 달개비, 꽃다지처럼 작은 풀꽃들에 마음이 머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 세상 어디선가 저보다 더 작고 아픈 생명이 됩니다.


아픔을 느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다는 이유로, 하나의 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같은 이유로 이 세상의 가장 낮은 풀꽃을 친구처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주신 선물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아픔으로인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삶의 경이로운 신비입니다. 


저의 작은 아픔이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서 오늘 만난 아픔인, 유난히도 빛나는 별 하나는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비가 오면 오토바이는 우산도 없이 빗길을 달립니다. 눈이 오면 오토바이는 똑같이 빙판길을 달려야 합니다. 어깨 힘줄이 끊어지더래도 오토바이는 넘어져선 안됩니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는 일은 곧 큰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누구든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일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하루 평균 1000여 건에 달하는 배달 물량입니다. 받는 이가 집에 없어도, 단 한 건의 배달 사고는 그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됩니다. 


엄마인 제가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배우지 못하도록  신신당부하는 것이 있다면 오토바이입니다. 가끔 운전을 하다가 제 차 앞에 짐을 실은 오토바이가 보이면,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뒤따를 때가 있습니다. 마치 제가 오토바이 호위병이 된 것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뒤따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타까운 순간은 언제까지 제 차가 오토바이를 호위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도로 위에서 서로가 멀어져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면 집배원이 타고 있는 것이 오토바이가 아닌 비와 눈을 가릴 수 있는 경차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한국의 택배 서비스 만족도 1위는 우체국 택배입니다. 서비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큰 만큼 우체국 집배원의 근무 환경에 대한 관심과 마음도 밝고 크게 비추게 됩니다.


오래 전부터 우체국 집배원을 바라볼 때면 무거운 마음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여전히 무겁습니다. 몇 년 전에 매스컴에서 집배원의 오토바이를 경차로 교체한다는 기사를 보고서 혼자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저희 집 대문 앞에서 우편물을 주고 가시는 집배원 아저씨는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십니다.


과음과 과속과 과로는 하나님도 막을 수 없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습니다. 배달 서비스 만족도 1위를 위해 달려온 마음처럼, 우체국 집배원 근무 만족도 1위를 위한 마음과 관심이 꾸준히 모아지고 이어져 개선되기를 기도합니다. 


우체국 집배원은 남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고 소중한 아들이니까요. 오늘 저 한 사람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작은 움틈이기도 합니다. 한 알의 씨앗을 심는 심정입니다. 흘리는 눈물은 빗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흘러서 세상으로 좁다란 물길이 나면 작은 생명들 목을 축이는 샘물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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