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5)
뜻밖의 소풍
우리 몇 몇 목회자는 원주에서 <태>라는 찻집을 하고 있는 최종위 씨를 ‘아저씨’라 부른다. 의미로 보자면 ‘형님’ 정도가 될 것이다. 언제 찾아가도 후덕한 웃음으로 맞아 주시는, 기꺼이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신 고마움을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다. 아저씨라는 호칭 속엔 그분의 나이가 아니라 인품이 담겨 있다.
최종위 아저씨로부터 온 전화는 뜻밖이었다.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지난번 언젠가 <얘기마을>에 아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미국에 있는 한 교회에서 말씀집회 강사로 청하며 우리 내외를 같이 청했는데, 아내는 동행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마을의 젊은 엄마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이야기를 <얘기마을>에 옮기는 것 자체를 아내는 원하지 않았지만 그 날은 형편이 그랬다. 밤늦은 시간에 주보를 만드는데 준비된 다른 원고가 없어 핑계 김에 쓰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눈 여겨 읽은 사람이 어떤 모임에서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고,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 병원에서조차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히려 퇴원 후에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체념할 뻔한 삶을 되찾아 너무 감사한 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마음이 찡해, 당신이 담배 끊은 값 1년 치에 해당하는 60만원을 단강에 보내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사모님이 마을의 젊은 여자 분들과 함께 바깥바람이라도 쏘이고 왔으면 좋겠어요."
뜻밖의 제안이기도 했고 내가 대답할 말도 아니어서 아내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전하겠다 하고서는 통화를 끝냈다.
"당신 행복한 고민해야 되겠어."
저녁상을 물리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내자 아내는 다시 주저했다.
"다른 생각 말고 고맙게 받아 들여요."
다른 이의 정성을 아주 무시하면 그게 오히려 티내는 것일 수 있다고, 당신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마을의 젊은 여자 분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 고맙고 편하게 받아들이면 좋겠다며 거들고 나섰다.
정말로 아내는 행복한 고민을 여러 날 했다.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마침내 고마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을의 젊은 엄마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더니 장소를 서울로 정했단다. 오히려 시골에 사는 입장에서는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다수의 의견이 서울 쪽이었다는 것이다.
하루 날을 잡아 모두 9명이 서울을 다녀왔다. 여주로 나가 고속버스를 타고선 서울로 올라가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흔쾌하게 받아들여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날만큼은 농사 걱정, 자식 걱정, 시골에 산다는 것조차 다 잊어버리고 마음껏 즐기기를, 영화도 보고, 점심으로 칼질도 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쇼핑도 하고... 그렇게 마음속 답답함이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도 여간 흐뭇하질 않았다.
모두들 늦은 시간에 돌아왔는데 모두의 손엔 비닐봉투들이 들려 있었다. 누구는 1000원짜리, 누구는2000원, 그렇게 싼값의 옷을 식구들 수대로 사 가지고 온 것이다. 계획했던 대로 영화도 보고, 식사도 하고, 팥 빙수도 먹고, 세상에 따로 할 일 없는 사람들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를 더없이 홀가분하게 보냈다 한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함께 나눈 이야기만큼, 함께 웃은 웃음만큼 마음의 무게와 고단함이 덜어졌기를, 다음날 새벽부터 여전히 잎담배 따는 고된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조금은 새로운 마음으로 일에 임할 수 있기를, 은총처럼 주어진 뜻밖의 소풍으로 인해.
<얘기마을>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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