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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함께 나눠야 할 몫

by 한종호 2020. 7. 7.

한희철의 얘기마을(18)


함께 나눠야 할 몫


“전도사님께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어요.”


주일 오후 신 집사님이 찾아왔다. 오는 길에 경운기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종대 엄마 어떤가 보려고 들렀다가 때마침 쏟아진 비에 마당에 있는 고추 들여놔 주느라 그랬다며, 머리와 옷이 젖은 채였다. 추워 보였다. 신집사님은 늘 추워 보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들네 집에 다녀왔는데, 아들 말이 방 하나 얻어 드릴 테니 자기 있는 동네 근처로 오시라 했다는 것이다. 농촌에서 품 팔아야 고생이고, 병관이 중학교 밖에 더 보내겠냐며, 고생하긴 마찬가지라 해도 인접 도시 청주에 가면 일할 것도 많고, 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터이니 그게 안 낫겠냐며, 내려오시라 했다는 것이다.


자칫 또 한 분의 교우를 보내겠구나 싶은 큰 아쉬움과, 그런 아쉬움을 이유로 무조건 가지 말라고 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 순간적으로 지난다.




집사님 생각은 어떠냐 물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오랄 때 가야지 나중에 귀찮게 가서는 안 될 것 같다고 가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시집와서 30년 넘게 살아온 이곳 단강이 고향이라면 고향인데, ‘솥 떼고 3년’이라는데 쉽게 떠날 수도 없고, 집사님은 어찌해야 할지 여러 가지로 생각이 겹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중1의 병관이를 데리고 홀로 품을 팔아 생활을 꾸려야 하는 생활엔 더 이상 자신이, 어쩌면 생의 의지가 없어진 것이다. 고르지 못한 일손, 그나마 하루 품을 팔아야 일당 4천원, 그렇게 푼돈 모아야 병관이 차비와 용돈 주고 ‘멸치 대가리도 못 사 먹는’ 식비 제하고 나면 무일푼이다. 늘 막막한 삶인데, 이제 곧 일손 끊기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좁다란 방 하나 쓰면서도 그 흔한 새마을 보일러가 없어서, 실은 연탄비가 없어서, ‘눈구댕이 빠지며 잔가지를 꺾어야 하는’ 또 한 번의 겨울. 아들 얘기 듣고 보니 자신의 삶이 더욱 처연해진 것이다.


막막한 이야기 오가다가 집사님은 확실한 대답 없이 일어났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결국 집사님은 안 떠날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집사님 홀로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삶의 무게와, 알량한 겨울 추위는 함께 나눠야 할 몫이다. 방충망 망사를 통해 빗길 돌아가는 집사님을 바라보며, 키 작은 집사님의 슬픔어린 작은 생을 바라보며 함께 젖는 가슴.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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