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81)
글 쓰는 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짜증날 정도로 무더운 날, 아예 마당에 나가 풀을 뽑았다. 집안에 앉아 축축 처지느니 ‘그래, 네가 더울 테면 어디 한번 더워 봐라’ 그러는 게 낫겠다 싶었다.
풀 돋기 시작한 봄 이후 교회 주위로 몇 번은 뽑았지만 여전히 풀들은 돋아났다. 비 한번 오고나면 쑥 자라 오르곤 하는 풀들, 풀의 생명력이란 여간 끈질긴 것이 아니다.
뒤따라 나온 소리와 같이 한나절을 풀을 뽑았다. 흠뻑 젖은 온 몸의 땀이 차라리 유쾌했다.
밤 늦은 시간 책상에 앉아 주보 원고를 쓴다. 어깨도 쑤시고, 잘려 나간 새끼손톱하며 돌멩이가 깊숙이 배겼다 빠져버린 손가락 끝의 쓰라림 하며, 맨손으로 잡아 뽑느라 힘 꽤나 썼던 손마디가 쉽게 펴지질 않는 불편함 하며, 글을 쓰기가 쉽지가 않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글 쓰는 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일하는 손이어야 한다는.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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