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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김기석의 새로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사랑

by 한종호 2020. 10. 17.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사랑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롬11:29)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조석 기운이 제법 시원합니다. 건강한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활 속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어서 다행입니다. 안심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래도 막혔던 통로가 조금은 열린 것 같아 좋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조심스럽게 이 시간을 살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본 방역 수칙을 잘 지켜가면서 일상을 살아내는 성실함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침 저녁 공원을 산책하면서 색깔이 변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조락의 계절이 다가옴을 실감합니다. 조금은 쓸쓸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싫지만도 않습니다. 피어남과 스러짐은 생명의 자연스런 흐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변화 속에서 꼬물거리며 자기에게 부여된 시간을 살아갑니다.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을 짊어진 채. 그런 눈으로 바라보니 낯선 이들조차 정겨워 보입니다.

큰 나무 둥치에 몸을 기댄 채 몸을 좌우로 흔들며 몸에 자극을 주는 분들을 봅니다. 투정 부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빙그레 웃게 됩니다. 엉거주춤한 기마자세를 한 채 어깨 위로 들어 올린 두 팔을 맹렬하게 앞으로 내뻗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싯지싯 다가오는 세월을 밀어내려는 것일까요? 눈을 감은 채 배를 퉁퉁 두드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떠날 생각이 없는 뱃살을 달래 어떻게든 돌려보내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붉은 볏을 세운 맨드라미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겨운 풍경들입니다.

생활 속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지면서 공원 곳곳에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느라 둘러쳐져 있던 끈들이 말끔히 제거되었습니다. 배드민턴 치는 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아침 대기를 뒤흔들더군요. 운동 기구가 있는 곳마다 늙수그레해 보이는 분들이 모여 분주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줄이 쳐졌는데도 굳이 그 안에 들어가 운동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유난히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그분들을 보면서 ‘죄의 사회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죄책감이라는 무게를 홀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 자기들의 죄에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의 부담을 경감하려는 일종의 전략일 겁니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준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청소년들이 유난히 욕을 많이 하고 위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동료들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른이라고 하여 다를 것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어린 시절에 포도밭 근처에 서 있던 배나무에서 주인 몰래 배를 훔쳤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는 자기가 도둑질을 했던 까닭은 “조금이라도 어쩔 수 없는 궁색에서가 아니오라, 정의가 없고, 싫고, 불의에 배불러서”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결함 자체를 사랑했단 자기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해서는 안될 일을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닌, 다만 해서는 안될 일인 그 때문에 한다는 것이 그토록 즐거울 수가 있었겠나이까?”(성아구스띤, <고백록>, 최민순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92, p.65) 생각해보면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그 일을 행했던 까닭은 벗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싫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끔 갈림길에 설 때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인들에게 준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우상 앞에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문제를 두고 고린도교회가 불필요한 논쟁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장에 나오는 질 좋은 고기가 우상 앞에 바쳐졌던 것이 많았다는 데 있습니다. 신자들 가운데서는 그 고기는 그저 고기일 뿐이라며 서슴없이 구매하여 소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걸 먹는 순간 우상과 연루된다고 생각하여 한사코 거부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 문제는 교회를 뒤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고전8:4). 그러니까 우상 앞에 바쳐졌던 고기라 하여 못 먹을 이유는 없다는 말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은 매우 단호합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고전8:13)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상 앞에 바쳐진 고기에 대해 말하면서 바울 사도가 전제했던 말이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고전8:1b)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윤리적 책무입니다. 

공원의 금지된 공간에서 운동을 하던 분들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네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문득 나뭇잎 사이에 떨어진 모과를 보았습니다. 채 익지 못한 채 떨어져 한쪽이 이미 검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주워올까 말까 하다가 그냥 버려두었습니다. 교회 사무실에 들어오니 고진하 시인이 이번에 출간한 시집 <야생의 위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목차에 ‘모과’라는 시가 있어 먼저 찾아 읽었습니다.

“아직 덜 익은 채 떨어진
황달 기 느껴지는 노란 연민을
책상 모서리에 올려놓고
하루 몇 번씩 킁킁 코를 대봅니다”(‘모과‘ 부분)

역시 시인은 시인이지요? 그는 덜 익은 채 떨어진 모과를 가리켜 ‘노란 연민’이라 말합니다. ‘노란 연민’이라니요? 그것은 사실 무르익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모과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혹은 마음일 겁니다. 아무의 눈길도 받지 못하는 그 모과를 그는 책상 모서리에 올려놓았습니다. ‘모서리‘라는 시어가 바닥에 떨어진 모과의 운명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킁킁 냄새를 맡음으로 시인은 모과의 존재를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버림받은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차마 자기 안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세월을 견디는 이들이 있습니다. 택배 노동자 한 분이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오늘은 더 늦을 거예요’라는 아들의 마지막 말이 자꾸 떠올라 울고 또 울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은 모든 이들에게 힘들지만, 특히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이들에게 참 가혹합니다. 쉼 없는 노동, 소외된 노동 속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지만 그런 문제들에 대해 눈을 감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정치인들에게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제정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일 또한 시민의 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조심스럽게 현장 예배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일단 이번 주일은 영상예배를 기본으로 합니다만 그래도 꼭 나오시고 싶은 분들은 사무실에 먼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꼭 붙들고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십시오. 금주의 남은 시간도 주님과 동행하면서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와 청량한 기쁨을 안겨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가슴 가득 하늘의 숨결을 받아 안고, 사랑의 여정을 계속하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10월 15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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